닿을 수 없을수록 도리어 선명해지는 감정의 역설
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멀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함께 걸었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고, 서로의 온도를 정확히 기억할 만큼 가까이 있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그 기억이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마치 어딘가에서 잠시 빌려온 긴 꿈처럼 흐릿해지면서도 이상하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거리가 멀어지면 감정도 저절로 옅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출발조차 하지 못한 채 한쪽에 그대로 붙어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어쩌면 새삼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꼭 '그립다'라는 말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면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에 자꾸 반복해서 떠오르거나, 별 의미 없었다고 생각했던 표정이 며칠이 지나도록 생각에서 지워지지 않거나, 분명 어제 있었던 일인데도 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해졌다가도 특정 순간에 갑작스레 또렷하게 다시 떠오를 때가 있다.
감정은 밀어낸다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쁘다고 잊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오히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는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실감한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로 꺼내기 어려운 묵음처럼 깊게 잠겨 있다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올라 하루의 균형을 바꾸어 놓는다.
사실, 대부분의 관계는 가까이 있음으로써 유지되지만,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일보다, 오히려 서로의 목소리가 가만히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을 전해줄 때가 있다. 수화기 너머로 흐르는 말들은 손끝처럼 따뜻할 때가 있고, 문장 사이를 천천히 건너오는 숨결이 실제의 온도보다 더 오래 남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은 단번에 증명되기보다는 조용한 지속으로 유지되고,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무르는 태도로 오래도록 버텨나간다. 그 상태가 어색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 감정이란 결국 설명하거나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남의 부재라는 시간은 공백이 아닌 관찰의 시간이다. 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하고, 상대가 내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의 깊이를 조용히 인정하게 만든다. 잠시라도 생각을 멈추려 해도 귓가에 남아 있는 목소리의 잔향이 다시 생각의 방향을 돌려놓기도 하고, 불빛이 스치는 저녁 풍경 속에서 문득 그 사람을 닮은 실루엣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가벼운 감정이었다면 금세 반복되었다 사라졌을 것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감정을 흐트러뜨리거나 불안하게 만드는 대신 오히려 불필요한 장식을 벗겨내고 가장 단순한 형태로 다듬어 놓는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꼭 만남의 순간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 흐르는 시간이 분명 더 많은 증거를 남기기도 하고,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더 분명해지는 감정도 존재한다. 이름을 붙이는 방식으로 감정을 규정하기보다는, 그저 쉽게 놓지 않고 있는 쪽을 선택하는 태도에 가까운 감정,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 감정, 어쩌면 그것이 갈망이라는 단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지도 모른다.
가까워지지 않아도 감정이 멀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게 되는 시점이 있다.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