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 있어도 길은 계속 이어진다는 감각
어떤 길은 빛이 아니라 그늘을 따라 걷는 편이 더 편안하다. 햇빛 아래에서는 늘 자세를 고쳐야 하고 표정도 다듬어야 하며,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밝음이 환영이 아니라 감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는 무언의 요구가 햇빛 속에 늘 스며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햇빛 아래에서는 때때로 따뜻함보다 피로를 종종 느끼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그늘은 어떠한 다른 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늘 아래에서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특별히 슬퍼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무엇이든 과장해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늘의 어둠은 나를 숨기는 색이 아니라, 나를 더 이상 꾸미지 않아도 되는 색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 안에서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비로소 숨이 고르게 쉬어진다. 누가 나를 보고 있는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이자 꾸밈없는 얼굴로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 그늘은 그런 공간이다.
그늘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 때로는 도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멈춰 있다는 사실이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지고, 쉬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몇 번 멈춰보니 알게 된다. 멈춘다는 것이 꼭 뒤로 물러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사라지지 않고,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서 다시금 출발하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그늘 속에 머무는 시간이 다음 걸음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흔히 그늘은 약한 사람들의 선택지로 여겨지지만, 실은 버티기 위해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공간이다. 햇빛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기보다는, 그늘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행위가 더 오래갈 수 있다.
사람도 관계도 마찬가지다. 늘 밝은 말만을 주고받는 관계보다, 장황한 설명 없이 조용히 옆에서 머물러 주는 관계가 더 오래 남는다. 말없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도 자연스럽게 쌓여나간다. 눈부신 확신보다 조용한 존중이 더 멀리 가게 된다.
Xystus라는 다소 생소한 이 단어는 '그늘진 산책길'을 의미한다. 햇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길이라기보다는, 빛과 그늘이 번갈아 드리우는 그 통로에서 그늘은 단순한 어두움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늘은 후퇴가 아닌 재정비의 구간이고, 멈춤이 아닌 이어짐의 방식이다. 잠시 몸을 숨길 수 있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이러한 그늘진 산책길 안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에 서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욱 따뜻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조급하지 않게 된다. 그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언젠가 다시 햇빛으로 나가는 일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늘에서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안에서는 내가 나인 채로 숨 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