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며 확장되는 마음의 형태
오랫동안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주로 바깥을 향하기보다는 안쪽으로만 기울어 있었고, 그 안쪽에서조차 자기 자신이라는 좁은 범위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대한 냉소는 자기 확신의 또 다른 형태였고, 타인의 감정이나 사정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판단 하에서 자신의 능력, 자신의 만들어낸 성과,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들만이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마음은 타인을 담는 그릇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기능과 역할을 보관하는 상자에 가까웠고, 그 상자에는 타인의 온기가 들어갈 틈도, 감정이 놓일 자리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시절, 추상적인 감정이라는 단어는 어떤 경우에는 불필요한 것이라고까지도 느껴지기도 했으며, 사람이란 결국 각자의 한계치 안에서 움직인다는 식의 단순한 정의로만 이해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부터였는지 정확히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그 단단해 보이던 상자가 실제로는 꽤 많은 여백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백은 타인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능력, 버텨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선이 생각보다 훨씬 더 넓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예상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히 찾아오는 변화였다.
깊은 마음이라는 것이 굳이 과장된 형태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말의 어조나 행동의 빈틈 같은 작은 신호에서 천천히 번져오는 것처럼, 내면의 그릇 역시도 갑작스럽게 커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알아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확장되는 내면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단단하게 닫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닫혀 있던 만큼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에 얼마나 서툴렀는지도 알게 된다. 하지만 서툴다는 사실은 부끄러움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담을 공간이 이제라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마다 감정의 용량은 서로 다르고, 누군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방식 또한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변화라는 것은 대체로 천천히,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일어난다.
어떤 감정은 그릇의 벽을 미세하게 흔들고, 또 다른 감정은 그저 그릇의 표면에 가벼운 온도를 남길뿐이지만, 그러한 일련의 흔들림과 미세한 온도들이 계속해서 쌓이면서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자기 자신보다 조금 더 깊은 층위로 내려가게 된다. 그 과정은 화려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조용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의미는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기류를 서서히 다른 쪽으로 틀어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버틸 수 있는 감정의 양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강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내부의 여백이 확장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 여백은 타인의 온기를 끌어안는 데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스스로의 단단했던 부분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조금씩 넓어진다.
특히, 어려움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능력은 눈에 보이는 강함과는 다른 종류의 힘이며, 그 힘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의 그릇'이란 단지 무엇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그 마음에 반응하게 되는 순간, 그동안 스스로에게만 쓰였던 내면의 공간이 다른 방향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변화는 작은 균열처럼 보이지만, 그 균열을 통해 들어오는 감정은 예상외로 넓고 깊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온기를 품을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야말로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지속되는 변화의 핵심이며,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로 인해 확장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