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_ 조각난 말들로 진실을 읽는 법

들려온 모든 기척이 결국 나에게 닿아 오는 방식

by Evanesce

Eavesdrop [ iːvzdrɑːp ]

1. 엿듣다


어느 순간에는, 굳이 전해달라고 하지 않은 말들이 문틈 사이로 스며들듯 나에게 도착할 때가 있고, 그 말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이상하게도 내게 필요한 조각들만 골라서 들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엿듣는다는 말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그 단어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누군가의 세계를 엿보려는 얄팍한 호기심이 아니라 내가 놓칠 수 있었던 현실의 흐름을 알아채기 위한 하나의 감각적 작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와 관련된 말들은 언젠가는 내 귀에 닿게 마련이고, 지금이든 나중이든 결국 드러날 것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이 이상하게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가끔은 우연처럼 다가온 말의 파편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내 생각의 구조를 바꿔놓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로 우연이 아니라 세상이 조용히 내게 던져준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듣지 않았다면 지나갔을 장면, 내가 알지 못했다면 손에 쥐지 못했을 단서, 그 모든 것들이 쌓여서 나의 앞날을 결정하는 과정을 겪고서 보면 엿듣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타인의 무언가를 침범하는 것이라는 피상적인 정의만으로는 절대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그 앎은 누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기척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지된다. 어떤 말은 소곤거리며 스쳐 지나가고, 어떤 말은 내가 듣지 못하기를 바라는 듯 억눌러진 채로 흘러가지만 그 모든 말들은 결국 나에게 도착한다.


내가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들려야 할 것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기 때문이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그 말의 방향과 의도가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들은 때로는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되고, 때로는 멈춰 있던 생각에 새로운 움직임을 더해주기도 한다.


엿듣는다는 것이 부정적인 행위로만 여겨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말의 맥락을 통째로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맥락을 잃을 만큼 서둘러 판단하지 않으려 하고, 조각난 말들 사이에서도 그만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보려 한다.


말은 늘 표면에 드러나는 그대로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사람은 의식하지 못한 채 진심의 방향을 드러내며 오히려 낮은 목소리, 무심한 말투, 그리고 은근히 멀어지는 기류 속에서 더 많은 것을 흘려놓고 간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다는 죄책감보다는 들리지 않았으면 놓쳤을 것이라는 안도감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어진다.


결국 엿들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모든 말은 제자리를 찾게 마련이고 감춰진 이야기들은 드러나게 되며, 진실은 일정한 속도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들은 것들이 나를 흔들어 놓는 대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태도이지 않을까.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모든 말이 결국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누가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보다 그 말이 내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대화에서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는 것도 아니지만, 흘러가는 소리가 전달해 주는 진실을 내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려 한다. 그런 방식으로 쌓인 조각들은 조금 더 나를 명확하게 만들어주고, 때로는 다음 선택의 방향을 선명하게 비춰주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Eavesdropping은 누군가를 해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조용한 감각의 확장일 뿐이다. 그리고 그 확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진실을 나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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