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_ 잘려 나가기 위해 불린 이름들

충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소모의 구조

by Evanesce

Expendable [ ɪkˈspendəbl ]

1. 소모용의

2. 소모 가능한, 대체 가능한


이인자가 일인자의 뒤를 계승한 사례가 있는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희망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구조에 대한 부정이 숨어 있다.


이인자는 언제나 다음을 약속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끝을, 그 결과를 미루어 둔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뿐이다. 그 자리는 승계를 위한 계단이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완충재일 뿐이다.


권력자의 오른팔이라는 표현은 신뢰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신체의 구조를 떠올려 보면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몸통은 위험을 감지하면 가장 먼저 말단을 희생시킨다. 오른팔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몸통을 대신해 상처를 입도록 설계된 부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을 공유하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거리는 미묘하게 벌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잘려 나갈 준비가 된 선 위에 서게 된다.


'이인자'나 '오른팔'이라는 호칭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존중이나 애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이 그들을 칭송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말들에 가깝다. 사람을 한 명의 인간으로 불러주기보다는 기능으로 고정시키고, 역할로 축소시키기 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 먼저 높여 부르고, 충분히 사용한 뒤에도 원망하지 않도록 감정을 마비시키는 장치. 그러한 이름을 얻는 순간, 이미 용도는 정해진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라는 문장은 얼핏 친밀함의 선언처럼 들릴지라도, 동시에 선택지를 제거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유일함이라는 말은 특별하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가장 손쉽게 교체 가능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자주 사용된다. 그 말에 취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고장이 나지 않도록,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는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대신 짊어지는 일이 충성으로 둔갑하고, 설명되지 않은 책임을 감내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람은 그렇게 서서히 스스로를 소모 가능한 존재로 만들게 된다. 필요할 때는 꺼내 쓰이고, 위험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잘려 나가는 위치, 그 과정은 배신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짜여 있던 설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제는 잘려 나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잘려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스스로를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시선과 의지에 따라 궤도가 정해지는 삶은 안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끝내 자기 자신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끌려가는 동안에는 그 속도를 느끼지 못하지만, 멈추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된다. 단 한 번도 내가 방향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와 약속에 의해 움직이는 삶보다는, 비록 불완전하고 더딜지라도 내가 만든 이유와 판단으로 하루를 쌓아가는 삶을 이루고 싶다. 쓰이고 버려지는 위치가 아니라, 오래 남아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리고 누군가의 말에 이끌리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만든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쪽으로.


그것이 비로소, 잘려 나가기 위해 이름을 얻는 삶이 아니라, 잘리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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