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_ 편견의 또 다른 이름

경험이 남긴 각도들

by Evanesce

Prejudice [ predʒudɪs ]

1. 편견

2. 편견을 갖게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편견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서조차, 오히려 그 확신만큼이나 또렷한 방향성을 느끼곤 한다.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선택과 배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완전히 비어 있는 시선이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에 가깝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판단을 자신도 모르게 다음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편견을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드러내서는 안 될 결함처럼 다루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시선을 숨기거나, 없다고 말하는 쪽을 택하며 살아간다. 마치 아무런 각도도 없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솔직함보다는 긴장에 가깝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경험을 해오며 살아간다. 기대와 어긋난 만남, 설명되지 않았던 상처, 반복되며 쌓인 감정의 피로 같은 것들은 기억 속에서 정리되기보다, 시선의 방향으로 남는다. 어떤 순간에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오랫동안 유지되던 관점을 바꾸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사소한 반복이 서서히 기준을 이동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형성된 시선은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든 태도가 된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상황을 마주할 때에도 우리는 언제나 빈손이 아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 우리에게 특정한 거리를 허락하고, 어떤 빛은 반사하게 만들며, 어떤 장면은 오래 바라보지 않도록 시선을 돌리게 한다. 이것이 편견이라 불리는 것의 실제 모습일지도 모른다. 공격적인 판단이라기보다, 경험이 남긴 방향 감각과 유사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견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만 이해될 필요는 없다. 악의라기보다는 기억에 가깝고, 왜곡이라기보다는 축적된 인식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배워 온 것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며, 다시 다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판단은 생존의 흔적이기도 하다.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 역시, 그것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온 감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가 되는 순간도 있다. 편견이 하나의 기준을 넘어 전부가 되려 할 때, 새로운 설명이 도착할 자리를 미리 지워버릴 때,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과거의 장면 위에 겹쳐 놓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시선이 그렇게 형성되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시선을 인식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을 때, 편견은 닫힌 결론이 아니라 열린 기준점이 된다.


어쩌면 편견은 또 다른 이름, 예컨대 '경험이 남긴 잔광', 혹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각도'로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빛을 받으며 살아가고, 그 빛의 방향에 따라 같은 사물도 다른 그림자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태도이다.


편견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것을 숨길 것인가, 아니면 인식한 채로 조금 더 넓은 시선을 시도할 것인가에 있다. 완전히 편견 없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편견이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아마도 그것이 판단보다 이해에, 단정보다는 여지에 조금 더 가까운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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