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_ 끝없는 터널의 한가운데서

결과 이전의 시간을 견디는 일

by Evanesce

Ordeal [ ɔːrdiːl ]

1. (힘들거나 불쾌한) 시련[경험/일]


보통 시련이나 혹독한 경험을 떠올릴 때, 그 안에 포함된 고통의 강도를 먼저 생각해보곤 한다.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버거웠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는지를 기준 삼아 그 시간을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시련들이 남기는 가장 큰 무게는 고통 그 자체라기보다, 끝나지 않은 채로 계속 흘러가야만 했던 시간에 있다. 아픔은 순간일 수 있지만, 통과해야만 끝나는 시간은 늘어지고 늘어지면서 마음을 잠식한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구간이 있다. 돌아갈 수도 없고, 건너뛸 수도 없으며, 다른 길로 우회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순간들 말이다. 그 구간에서는 노력과 의지조차 즉각적인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정해지기 전까지의 시간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함은 고통보다 더 날카롭게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하루가 하루로 느껴지지 않고, 며칠이 한 덩어리처럼 늘어져 흐를 때, 우리는 시간 그 자체와 싸우고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시련'은 힘들어서 겪는 것이 아니라, 겪지 않으면 끝나지 않기에 견뎌야 하는 시간의 이름이다. 자발적인 도전이라기보다는 시험에 가깝고, 준비가 충분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며, 피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 안에서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어떤 약속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통과했다는 사실만이,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시련 속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길지 않을지도 모르나, 심리적으로는 영겁처럼 늘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감각, 지금의 고통이 의미를 갖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괴로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기다린다는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태를 견디는 일이기에 고통스럽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속도를 내도 앞서갈 수 없는 구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탱할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뿐,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긴 터널 안을 걷는 것과 같이, 빛은 보이지 않고 발걸음은 무겁지만, 걷지 않으면 출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터널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것은 대단한 용기라기보다,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힘에 있다. 멀리 있는 결과를 상상하기보다, 지금의 한 걸음을 계속 이어나가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시련의 끝에는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알 수 없고, 기대와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에 도달한 사람만이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시련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기준을 바꾼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견딜 만한지에 대한 감각을 다시 정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 시간을 견딘다. 힘들어서라기보다, 이 시간이 흘러가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의 끝에 보이는 희미한 빛처럼, 아직 선명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시간을 향해, 오늘의 하루를 통과한다. 그것이 시련의 본질이고, 우리가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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