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_ 끝이 보이지 않을 때의 방향

돌아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길에 대하여

by Evanesce

Labyrinth [ læbərɪnθ ]

1. 미로


요즘의 나는 종종 미궁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을 느낀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고, 출구는 보이지 않으며,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지나온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감각이 들고, 그때마다 이 방향이 맞는지, 내가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지만 그 질문에 오래 머물수록, 나는 조금 다른 생각에 닿게 된다. 어쩌면 나는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경로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미궁의 구조는 흔히 혼란과 미로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오류로 인해 헤매는 공간은 아니다. 그 안에는 하나의 길만 존재하고, 직선이 아니라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옆으로 빠지고, 중심에 가까워진 듯하다가 다시 멀어지는 느낌을 주지만, 그 모든 우회는 목적지로 향하는 하나의 흐름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 안을 걷는 이들은 종종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그런 경로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끝은 멀어 보이고, 속도는 더디며, 눈에 보이는 변화는 거의 없는데, 그럼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이미 지나온 지점과 너무 닮은 풍경 앞에 다시 서 있는 것 같아 허탈해지기도 하지만, 그 반복조차 의미 없는 되풀이가 아니라, 구조 안에 포함된 회전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도 사실은 같은 자리가 아닌 다른 층위에서 마주한 비슷한 지점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미궁 속에서 가장 힘든 것은 방향이 아니라 시간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걸음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결과를 확신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통과하는 일과 닮아 있다. 그러나 미궁의 중요한 전제는 출구는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저 안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 지연은 실수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지연이며,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중심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조는 인내의 산물이다.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길이며,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리듬이다. 서두른다고 해서 짧아지지 않고, 의심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이 경로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이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서 지금의 길을 걸어가는 것. 보이지 않는 출구를 상상하며 불안에 잠기기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의 형태와 감각을 느끼는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미궁을 벗어나야 할 공간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구조로 받아들이려 한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경로 위에 서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실 자체를 견디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구조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쪽을 택하려 한다. 결국 내가 도달할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고, 이 길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 위에서, 오늘의 우회를 오늘의 방식으로 걷는다.


미궁 속을 걷는다는 것은 방향을 찾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 구조를 고통으로 남길지, 하나의 깊은 과정으로 남길지를 결정한다. 나는 그 선택을 조금 더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걸어보려 한다.

이전 19화I _ 내가 서 있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