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해고를 넘어 새로운 도전까지

by YL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있는 팀 미팅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나른하게 시작했다. 보통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어서 다들 가볍게 참여하는 미팅이었다.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CEO가 보낸 전사 이메일이 한 통이 도착했다. 10,000명 중 4,000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10% 감원은 몇 번 있었지만 40% 해고는 처음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역시나 AI였다. 이메일에는 조금 찍 자주 해고하는 것보다 한 번에 큰 감원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처하는 것이 리더십의 선택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가볍게 시작한 미팅은 이 충격적인 이메일 하나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팀원과 매니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숫자였다. 모두가 이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는 동안 3분 뒤 개별 통보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나는 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9명의 팀원 중 6명이 해고 통보를 전달받았다. 심지어 우리 팀을 이끌던 매니저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량 해고 소식은 테크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퍼졌고 많은 뉴스가 쏟아졌다. 역설적이게도 그날 Block 주가는 20%나 뛰었다.


승진과 해고

40% 해고가 시작되기 한 달 전 나는 승진에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직군 레벨이 올라갔다). 승진 덕분에 이번 해고를 살아남은 것인가 생각했지만 다른 팀들을 보면 최근 승진이 자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좋은 인사 고과를 받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승진 심사를 계획하고 진행한 매니저와, 심사에 사용된 내 프로젝트를 함께 한 동료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 부채감이 느껴졌다. 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기쁨을 뒤덮는 더 큰 감정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세 번의 해고를 모두 견뎌내고 승진까지 한 이유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가 조직을 깎아내는 순간에 '누구를 남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이번 해고가 절대 마지막이 아닐 거라 확신하기에 꼭 알아내고 싶었다.


대체 불가능함의 실체

대규모 구조조정 앞에서 생존은 단순히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회사가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에 정확히 올라타 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내가 맡은 굵직한 프로젝트들은 회사의 수익 혹은 사용자 수에 직결된 프로젝트였다. 운도 따랐지만 해당 업무를 리딩할 수 있고 모두가 맡길만한 실력을 쌓아왔기에 담당자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매니저가 강조했던, 일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방향에 맞춰 일하는 방식을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맡은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었고 리더십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해온 점이 합쳐져서 40%라는 거대한 체에 걸러지지 않은 이유였다고 생각된다. 예상외로 AI를 얼마나 적용했는지는 해고의 지표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에게 남겨진 숙제

반 이상의 팀이 사라지고 남겨진 자리의 무게는 무거웠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중단되었고 당장 관리해야 할 기능과 서비스들이 너무나 많았다. 사내에서 만들어진 AI 에이전트들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빈자리를 메꾸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LLM의 성능이 좋아졌다 한들 리더십이 바라는 AI 적용률과 실무진의 체감의 간극은 컸다. 제품의 철학과 방향성을 고민하던 PM들을 직관을 대체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Cash App의 주요 프로젝트와 협력사들과 진행 중이었던 업무들을 보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장 인력이 없었기에 내려온 결정이었겠지만 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생존한 모두가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휩싸인 환경에서 나는 이 부채감을 털어내기 위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보상이 아닌 새로운 시류에 적응하라는 회사의 기회라고. 비록 대량 해고의 이유를 명료하게 공유하지 않은 리더십에 실망한 상태였지만 내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수많은 사용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한 달은 혼란 속에서 제품 유지에 집중했다. 아마 대부분의 팀들이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원치 않는 업무의 연속이었지만 떠난 동료의 몫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생존을 넘어서

책임감은 곧 압박감이 되었다. 당연히 업무량과 맡은 범위가 늘어났고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 불안의 시대 한복판에 던져진 셈이었다. 거대한 파도를 몸소 견디고 있지만 이게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확신 속에 내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를 다시 고민했다.


산업 전체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진정으로 이로운 환경과 나아갈 방향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변수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나서야 생각이 명확해졌다. 어차피 부딪혀야 할 변화라면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올라탈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세 번의 해고를 버텨내고 승진을 한, 어쩌면 안전하고 익숙하게 느껴질 이 울타리를 이제는 벗어나기로 했다. 더 이상 생존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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