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탁한 날, 내 마음도 탁했다

미양의 감정생태 이야기

by 미양
KakaoTalk_20200119_014550725_02_72.jpg 자연으로 발견한 감정생태 2020 ⓒmee.yann

창문을 열었다. 회색 하늘. 뿌연 공기. 숨이 막혔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도 이렇구나. 아이들에게 물었다.

"좋은 공기를 그려볼까?"

한 아이가 하얀색을 칠했다. 한 아이가 하늘색을 칠했다. 한 아이가 연두색을 칠했다.

나는 붓을 들 수 없었다. 맑은 공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회색과 갈색과 먼지색과 탁한 색이 뒤섞여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 마음에 맑은 공기가 없었다. 수업을 바꿨다.

"좋은 공기만 그리지 말고, 나쁜 공기도 그려볼까? 다양한 공기를 그리면서 내 감정도 느껴보자."

아이들이 그렸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은 답답해하고, 매연이 나는 도로는 화나있고, 공장에 불뚝 솟은 굴뚝은 무섭고, 비 온 후 하늘은 시원하다한다.

나도 그렸다. 뿌연 회색 하늘. 그리고 적었다.

"숨이 막혀."

신기한 건, 자연을 그리니 감정이 보였다는 것.

"오늘 기분이 어때?"

이렇게 물으면 모른다.

"오늘 하늘은 어때?"

이렇게 물으면 안다. 회색. 뿌옇고, 답답하고, 무겁다. 그게 내 기분이었다.

어느 날 깨달았다. 나는 봄을 못 느낀다. 여름도 못 느낀다. 가을도, 겨울도. 사계절이 다 똑같았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들고.

계절이 바뀌는 줄 몰랐다. 나무가 꽃 피우는 줄 몰랐다. 단풍 드는 줄 몰랐다. 눈 오는 줄 몰랐다. 나는 자연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게 나를 잃어버린 거였다.


상담사가 말했다.

"감정은 강물 같은 거예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강물은 흘러가잖아요. 막으면 썩고, 흐르면 맑아지죠."

"감정도 그래요. 억누르면 썩고, 흘려보내면 맑아져요."

나는 물었다.

"어떻게 흘려보내요?"

"표현하면 돼요. 그림으로, 글로, 소리로, 움직임으로."

그날 나는 강을 그렸다. 막힌 강. 썩은 물. 검은 색. 그게 내 감정이었다.


수업중 한 아이가 그림을 그렸다. 사막. 나는 물었다.

"왜 사막을 그렸어?"

"아무것도 없어서요."

"지금 기분이 어때?"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나는 울컥했다. 그게 나였다.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 감정이라는 식물이 다 말라 죽었다. 슬픔도 기쁨도 화도 사랑도 다 말라버렸다. 나는 감정의 사막에 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봤다. 산불이 난 숲. 모든 나무가 타고 모든 동물이 떠나고 모든 식물이 죽었다.

1년 후. 작은 싹이 돋았다. 3년 후. 풀이 자랐다.

10년 후. 나무가 자랐다. 숲은 20년에 걸쳐 천이를 이루어 회복해나갔다.
나의 마음도 그 시간을 견디면 다시 숲이 될 수 있겠구나.

매일 아침. 창밖을 봤다.

오늘 하늘은, 맑은가? 흐린가? 비 오는가?

그리고 물었다. 오늘 내 마음은, 맑은가? 흐린가? 비 오는가?

신기하게도, 하늘을 보니 마음이 보였다.

어제는 흐렸다. 그래서 나도 우울했다. 오늘은 맑다. 그래서 나도 가볍다.

깨달았다. 감정도 계절처럼 순환한다는 것.

봄의 설렘, 기대, 새로움과 여름의 열정, 에너지, 뜨거움.
가을의 쓸쓸함, 정리, 내려놓음과 겨울의 고요, 휴식, 충전.

나는 항상 봄이고 싶었다. 항상 설레고 항상 기대하고 항상 새롭고.

하지만, 가을도 와야 하고 겨울도 와야 한다.


슬픔의 겨울이 있어야 기쁨의 봄이 온다.

지금 나는 매일 자연을 관찰한다.

공기의 색 하늘의 빛 나무의 흔들림 바람의 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내 감정을 발견한다.


오늘 공기는 맑다. 나도 맑다.

오늘 바람은 차갑다. 나도 외롭다.

오늘 하늘은 높다. 나도 자유롭다.

자연을 보니 나를 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 날씨인가요?

맑은가요? 흐린가요? 비 오나요? 눈 오나요?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 계절인가요?

봄인가요? 여름인가요? 가을인가요? 겨울인가요?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창밖을 보세요.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나무를 보세요.

자연이 알려줄 겁니다. 당신의 감정생태를.



미양
생태감성 아티스트 | 감정 · 예술 · 환경을 잇는 교육 전문가

"나로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환경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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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mee.y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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