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메뚜기, 지금은 능력자
2001년 첫 직장 입사 후, 2010년까지
(나의 정확한 이직 횟수는 브런치에서 처음 밝힌다. 조금 민망...)
한국에서 잦은 이직은 지금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외쿡에서 잦은 이직은 능력이라고 하던데...)
불현듯, 4-5번째 이직 면접 때,
좋지 않은 표정으로, 왜 그만두었는지 회사별로 다 설명하라는 면접관 분이 생각나네~
소싯적 나는 자존감이 매우 뛰어난 아이 었음을 앞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자존감 = 오만함'은 분명 아닌데...
직장 상사의 슈퍼 울트라 갑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
(40대 중반인 지금은 아주 잘 참는다. ^^)
그래서 정치가 뭔 지, 아부가 뭔 지도 배우지 못했고,
조금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내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사표를 냈다.
지방대 출신에, 학점도 높지 않았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던 내가
1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첫 직장에 입사했고,
그 뒤로도 이직이 그리 어렵지 않았었기에..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함'이었다)
지금 브런치에서 처음 밝히지만,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1. 사무실이 (지옥철을 경험해야 하는) 강남으로 이전
2. 새 사무실에서의 내 자리 = 완전 뻥 뚫린 통로 자리
두 가지였다.
사당에서 2호선 환승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모르는 외간 남자에게 본의 아니게 안겨 있기도 했고,
내 얼굴 화장품을 모르는 사람 옷에 묻혀 거의 쌩얼이 되어 내리기도 했고,
지하철 문이 닫히게 하기 위해 발을 접는 기이한 행동도 해 봤다.
새로운 사무실에서 내 자리는 신입답게...완!전! 통로 자리였다.
누구나 고개만 돌리면 내 컴퓨터 화면을 볼 수 있는...
믿기 힘들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직한 곳은 아주~ 소소(小小)기업이었다.
사장님 두 분, 이사님 한 분, 그리고 직원 3명인...
이 회사를 들어가게 된 이유는,
1. 첫 직장보다 연봉을 올려줬다. (명절 상여도 100% 지급 약속)
2. 팀장처럼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당시 내 경력은 신입을 갓 벗어난 정도였지만..)
두 번째 직장인 이곳은 짧게 기술하고 끝내려고 한다.
입사하고 돌아온 명절에 약속된 상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표를 냈다.
세 번째 직장은,
두 번째 직장에서 어린이 경제/경영 관련 콘텐츠 개발을 하다 알게 된 연구소!
내 전공과는 무관한....
그러나 세 번째 직장 직원들은 모두 젊었고,
그 당시 직장 분위기로 상상하기 힘든, 직급에 상관없이 닉네임 부르기를 실천하고 있었던 회사다.
(대표도 OOO! 이렇게 닉네임으로 부름. 미쿡 문화~ ㅋㅋ)
연봉은 쥐꼬리(?)였으나,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
매일 야근을 했지만, 신났었다.
출퇴근 왕복 4시간이 소요되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실업계 고교 경제 교과서인 비즈쿨 집필에도 참여했었고,
한일경제협회에서 주관하는 한일경제캠프 첫 회 진행도 내가 했었다.
이 행사는 아시히 맥주에서 후원해, 도쿄 아사히맥주 본사에서 진행되었고,
NHK 뉴스에도 15분간 방송되었다.
나는 일본어도 잘 못하면서, 캠프 전 일정 사회를 봤고,
당시 아사히맥주 회장님이셨던 세또 유조 회장님과 팔짱 끼고 사진도 찍었다. ^^
세 번째 직장은 본의 아니게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고 나서도 상처 받은 일들이 좀 있었고....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이다.
(나빴던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는 사실~)
네 번째 직장은, 첫 직장 상사 분 소개로 입사하게 되었다.
(첫 직장에서 내가 일을 못하지는 않았나 보다.^^)
모 언론사 부설 경제연구원이었다.
글로벌 유수 대학 출신 석/박사 분들이 수십 명 재직해 있었다.
국정원 출신도 있었다.
나는 지방대 학사 출신인데...
(하지만, 나는 내 학벌에 기죽지 않는다. 학벌 = 업무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곳도 내 작은(?) 경력에 비해, 꽤 큰 프로젝트를 맡겨 주셨다.
(일복은 있는 편, 일 욕심이 있어서인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면,
지금은 국가의 적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국가의 자랑이셨던 분...
이 분을 내가 운영하는 과정에 모시고 싶었다. 간절하게~
그분께 메일을 썼다.
당연히 바로 거절당했다.
(사실, 섭외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메일을 다시 썼다. 진심을 담아서...꽤 길게~
(꼭 섭외하고 싶은 오기가 생겼고......나는 국문과/문예창착과 복수 전공자다. 글이 좀 된다는...^^)
다음 날, 내 자리로 전화가 왔다.
국가의 자랑이셨던 그분에게 직접...........
본인이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아, 매우 타이트하게 일정이 잡혀 있는데,
O월 O일 1시간 정도 시간이 되니, 그 날 가겠다고...
(당시 기쁨을 표현할 수 있었던 용어들 ^^)
연구원장님께 '빅가이'를 모셨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 분 방탄차 타고, 보디가드 2명 대동하고 오셨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재직했던 언론사 신문 1면에 이 분 기사가 실렸다.
(내가 직접 메일 써서 모신 분~^^ 어깨왕뽕!!)
짧은 재직 기간 동안 대단하신 분들, 한창 인기 있었던 연예인들 많이 봤다.
(에피소드도 몇 개 있지만, 소송이 무섭기 때문에 생략!!)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과정에서 금강산 워크숍을 갔다.
대단한 분들 20명 정도를 모시고,
20대의 어린 여직원(나)이 대단한 이 분들을 인솔해 금강산에 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