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최근 왕궁인 끄라똔(Kraton)과 왕실정원인 따만 사리(Taman Sari)등을 포함한 도시의 많은 장소들과 이를 관통하는 철학적 배경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쁘람바난과 보로부두르가 가까운 거리에 있고 마타람 제국의 상징과도 같던 므라삐 화산도 지근거리에 있는데, 즐겨 다니는 끄라똔 지구마저 세계문화유산에 추가된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말리오보로 거리와 왕궁지구, 그리고 그 주위의 허름해 보이는 건물들 대부분은 그런 이유로 뭔가 문화적인 자부심을 풍겨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링로드 내의 서북쪽에 있는 가자마다 대학과 서남쪽의 말리오보로 거리와 왕궁, 그리고 동남쪽의 꼬따 그데(Kota Gede) 그 아래의 이모기리(Imogiri) 등은 보로부두르나 쁘람바난과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들이다. 도시 곳곳을 누비는 베짝들, 므라삐 화산을 형상화한 조글로 건축양식, 그리고 네덜란드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해 재배되던 사탕수수 때문에 아마도 더 달게 되어 버린 족자의 음식들 역시 이 도시를 잘 설명해 주는 도식과도 같다. 가자마다 대학과 끄라똔 지구 사이에 있는 오래된 건물들에 자리 잡은 유명한 식당들과 카페들은 그런 이유로 내가 족자카르타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만들어 준다.
나름대로 근사해 보이지만 가격은 상당히 저렴하다. 밥에 반찬 몇 개가 나오는 나시 꾸찡(Nasi Kucing)은 한화로 500원 정도고 음료 역시 비슷한 수준이다. Nasi는 밥, Kucing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고양이 밥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Nasi를 자바어로 바꾸면 다시 Sego(스고)가 되는데 자바식당들에선 이를 스고 꾸찡이라고 표기해 놓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의 소수종족인 말레이족이 쓰던 언어를 바하사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의 공용어로 정한 인도네시아이지만 1억 명에 육박하는 최대 종족인 자바인들의 언어가 가지는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하다. 당연히 자바어가 인도네시아의 표준어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자바족들은 배우기 까다로운 자바어보다는 이미 교역어로 오랫동안 쓰여왔던 말레이어를 표준어로 받아들였다. 나 역시 자바의 심장과 같은 족자카르타에 거주하고 있지만 Mongo(영어의 Please, 인도네시아어의 Silakan), Matur Nuhun(Thank you, Trima Kasih), Sami Sami(You are welcome, Sama Sama) 세 마디의 자바어 밖에는 사용할 줄 모른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문화 곳곳에 자바어는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솔로강변에 자리 잡고 있어 주로 솔로로 불리는) 수라카르타 출신의 대학원 동기는 내가 계산하기 전에 먼저 나가 계산을 해 놓았다.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가끔은 밥을 얻어먹는 것도 이들을 존중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기분 좋게 얻어먹었다. 한참 동안을 논문 이야기를 하며 다른 동기들과 같이 만나서 빨리 논문을 발전시킬 기회들을 만들자는 야침찬 계획을 세우며 헤어졌는데 한국에서나 인도네시아에서나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