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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Feb 06. 2022

마흔다섯, 공부를 시작했다

첫 수업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40대 중반에 유학을 하게 됐다. 그것도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다. 요즘엔 청년이지만 예전 같으면 중년의 나이이다. 원래 계획에 있던 일도 아니고 삶에 뭔가 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뭔가에 이끌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 기독교적 용어로는 섭리라고 하면 적당할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자 하는 걸 한번 해보자는 마음다. 인도네시아에 살던 중이었고 work permit으로 있었기 때문에 주위 분들이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다행히 아내도 꿈꾸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지해 주었지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경제적 문제와 관련해서 객관적이고 장기적인 대책 없었기 때문이다. 


엊그제 학교에서 수업이 있었던 관계로 그랩 오토바이를 불러 학교에 다녀왔다. 코로나 여파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면접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었는데 드디어 처음 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교직원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늘 이메일과 왓츠앱, 줌으로만 만나다가 대면해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의 4년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기념촬영을 한 후, 도서관에 들렀다가 라이팅을 도와줄 닥터 퀸란의 집으로 가서 같이 몇 시간 공부를 했다. 오랜만에 캐주얼로 차려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보니 마치 학부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인도네시아의 국립대학인 가자마다(Gadjah Mada) 대학교의 종교학 박사과정은 컨소시엄으로 운영된다. 소속은 가자마다대학교지만 명문 이슬람대학인 수난 깔리자가와 역시 명문 기독교대학인 두따 와짜나 대학에서도 교수진을 파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과정의 경우 종교학자 두 분 이슬람 신학자 한분 개신교 신학자 두 분이 협력해서 과정생들을 가르친다. 법적으로 무신론자가 존재할 수 없는 국가라서 각자의 신앙을 전제로 가르치기에 장로교 목사인 나의 경우에도 오히려 불편함 없이 수업에 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모여사는 곳이고 그중에서도 술탄이 다스리는 자치주이다 보니 나의 신분을 누군가 물을 땐 괜히 긴장이 된다. 텍사스 출신의 닥터 퀸란이 가르치는 라이팅 수업 중에 이슬람 예배시간이 되자 무슬림 학생 둘 근처 무스짓(모스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둘에게 무스짓에 들어갈 때 조심하라고 당부다. 한쪽 무스짓은 좀 나은데 한쪽은 엄격하니 외부인이 갔을 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러가 종종 있으니 꼭 이곳 학생이라고 이야기한 후 방문하라고 당부했다. 사실 종교적 테러는 다른 종교 간에 일어나기보단 극단주의자와 평범한 신앙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니 조심하는 게 좋긴 하다. 물론 나에게도 역시 불필요한 신분 노출을 삼가라고 당부를 했다.


늘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종교로 인한 테러 뉴스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신분을 알고 있긴 하지만 외부인이 그걸 알았을 때는 특별히 극보수의 이슬람주의자들이 그것을 알았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곳 사람들 만날 때마다 외국인인 내가 여기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한다. 학생인 걸 알면 학과를 물어본다. 속해 있는 대학원이 문화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그저 Budaya(culture)를 공부하고 인도네시아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넘어갈 뿐이다. 린 말은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기분 좋은 긴장감과 함께 마흔다섯의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4년 동안의 마라톤을 낙오하지 않고 마치는 게 목표지만 사실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어쩌면 내가 원래 공부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던 게 건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결승선이 나오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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