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곤니찌와"
몰도바(몰디브 아님)에서 온 그녀는 안부인사 "하와 유"와 가볍게 던진 스몰토크에 꽤나 진지하고 장황하다.
길게는 3분에서 5분까지 늘어지는 그녀의 독백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척 한다. 다른 이의 의견에 대한 물음으로 마침표가 찍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고싶은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 것만 같아도 상대의 말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동양에서나 필요한 덕목인가보다.
겹치는 오디오에 아랑곳 않고 끼어든다. "쏘리"는 당연히 없다.
그렇다고 그녀를 다른 이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이르다.
외국인인 나와 함께 병원에 가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현재 나의 상태는 어떤지 물어봐줄줄 아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에서 젊은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기란... 한국의 50배 정도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50배는 내 마음대로 적은 숫자이다.
잠깐, 진정하자. 젊은 여성으로써 한국에서 살아가기 녹록지 않다는 점을 왜 모르겠는가.
어린 아이부터 중절모 노신사까지, 모든 이들의 핫스팟인 광화문 서점의 한 코너에서 6개월 가량 일해본 적이 있다.
광화문은 날티 유부남이 한낯 알바생에게 플러팅을 하고, 고객님을 향한 직업적 친절을 개인적 애정으로 멋대로 해석해 스토커 짓을 일삼는 카라티 무지개우산 집착남이 있는 곳이다.
파트장님께서 씨씨티비로 그 놈의 인상착의를 확인해두신 덕분에, 또 파트장님께서 마침 우리 코너에 계셨던 덕분에 그 40대 집착남을 퇴마할 수 있었다. 아 물론 나는 공포심에 이내 그 알바를 그만 두었지만서도.
나는 지금, 이 곳 몰도바에서도 그런 노골적인 스토킹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권한과 예상을 벗어난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1940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의 일부였던 몰도바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소련의 잔재가 남아있다.
그 잔재는 건물일수도, 문화일수도, 사람일수도 있다.
모르는 이에게 웃어주지 않고, 아닌 것에는 단호히 이야기하며, 자칫 무례히 들릴 수 있는 말도 서슴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이들.
인터넷으로만 봐왔던 "니하오" "칭챙총". 울그락 불그락한 남자 둘이 다가와 "너 중국인이야? 나 중국어로 욕할 줄 알아. 씨팔! 킥킥" 거리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고.
소중한 내 한국 친구에게 "킴정은!" "킴정은!" 거리며 키득대는 아이들을 살기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읽으신 한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에게 루마니아어로 무어라 타일러주신 덕분에 나는 그날, 아무 일 없이 집에 올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도착한지 삼 일 만에 벌어졌던 일이었다.
8월의 열기에도 몰도바는 외롭고 차가운 나라처럼 느껴졌다.
"나.. 이런 나라에서 2년동안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