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졸업생 이야기
봄희 꽃말(11기, 양강도 대홍단).. 느낌을 잃어가는 나를 보며
원주 셋넷 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만난 남한 친구들은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 대학 신입생답지 않게 사회에 불만이 많았고, 부모의 소원을 대신 이뤄야 한다는 생각들로 힘들어했다. 그들이 품고 있는 고민에 공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나약해 보였다. 하지만 대학을 마칠 무렵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력서 앞에서 밤을 뒤척이고, 면접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친구들과 마음을 열고 나누지 않았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렵고 서툴다.
힘들고 외로울 때 솔직하게 표현하는 친구들이 부럽다. 살면서 외로운 모습이 부끄러운 게 아닌데 애써 외면하고 숨긴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과 비교하며 무시한다. 아픔과 고통은 비교될 수 없는 것이고 아픔을 겪는 사람이 느끼는 만큼 아픈 것인데 함부로 비교하고 판단하려 든다. 이런 내 태도 때문에 친구들과 벽이 생기고 마음속 대화를 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남한 친구들이 차별을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들을 차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는 게 만만치 않다. 글쓰기 느낌을 잃어가는 내 모습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 백 송이 꽃에는 백 가지 꽃말이 있다.. 장 뤽 고다르가 한 말.
* 9월 출간 예정인 셋넷 학교 두 번째 이야기 단행본에 담을 글들로 이 여름을 위로한다.
* 사진 왼쪽 새를 표현하는 배우가 봄희. 통독 25주년 기념 초정공연으로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