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영 Apr 13. 2022

그녀와 함께 병사의 휴식

셋넷학교 이야기 끝 : 인터미션(intermission)


‘쿠쿠루 쿠쿠 팔로마..’ 애절하게 여운을 남기는 영화 <그녀에게>의 여주인공은 투우사다. 그녀의 투우 행위가 인간이 동물에 가하는 잔혹한 행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인간이 차별에 맞서는 단호한 시위처럼 위엄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여린 자들이 두려움에 맞서는 마지막 몸짓처럼 처절했다. 거대한 황소를 굴복시켰던 그녀였지만 부엌에 들어온 뱀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거리로 뛰쳐나왔던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밤 거리에서 울부짖는 그녀에게서 내가 사는 일상과 사회와 나라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약자와 이방인들의 절박한 투우들이 어른거렸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사뭇 다른 감정이다. 무서움은 차가운 정종을 데우면 날아가는 알코올 같은 감정이지만, 두려움은 존재의 영혼을 사로잡아 기어이 노예로 삼는다. 거친 황소는 그녀 일상을 사로잡는 두려움들의 실체다. 그녀는 남자와 강자들이 만든 편견과 차별이라는 두려움에 담대하게 맞선다. 우리들 사는 세상은 기득권을 누리려는 나라와 권세와 강자들이 내뿜는 광기로 우울하다.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나라와 권세와 강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 때문에 미움과 증오로 얼룩진다. 그럼에도 거친 소에 맞서다 쓰러진 그녀는 우리 곁에 있다. 나와 당신의 반짝이는 삶을 두려움으로 옭아매려는 허위를 깨우치려 우릴 떠나지 않는다. 탐욕의 나라와 구역질 나는 권세와 천박한 강자들이 내뿜는 편견과 차별에 당당히 맞서는 그녀의 용기가 참된 사랑의 모습이다. 셋넷이 그리워하는 나라와 권세와 평화일지니, 그대와 나 꿈꾸는 삶이 행복하여라.


잠시 글을 쉬어야겠다. 3년 동안 글을 썼다. 오래전 그녀를 사랑한 이후 기적 같은 일이다. 브런치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환경을 닮는다. 내 감성과 글도 내가 살아온 삶으로 숨 쉰다. 셋넷 이야기는 2019년 3월에 시작했고 매주 글을 올렸다. 셋넷학교는 북조선 출신 이주청소년의 문화적응과 현실 정착을 돕기 위해 2004년 길 위에 세운 학교다. (정규형 비인가 비종교 대안학교) 


물질과 정신과 내 생의 전성기를 바쳐 가꿔온 배움의 정체를 성찰하고 싶었다. 셋넷이 품었던 사랑과 열정은 70년간 이 땅에서 반복해온 낡은 이념과 상투적인 동정이 아니다. 분단체제가 집요하게 만들어내는 편견과 집단 열등감에 맞서, 일상의 소통과 공동체 감수성으로 평화 연습을 해온 길이었다. 속절없는 세상에서의 글쓰기였지만 행복했다. 처음과 중간과 끝을 함께해준 익명의 길벗들에게 눈물을 글썽인다.  


그대는 여행을 속히 마치지 마시오 / 여행은 오래 지속될수록 좋고 / 그대는 늙은 뒤에 / 비로소 그대의 섬에 도착하는 것이 낫소 / 길 위에서 그대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이타카>  



작가의 이전글 낯선 사람과 춤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