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환(셋넷 자원교사, 군산대 교수)
2005년, 선영이가 한국을 떠나기 전 같이 식사했다. 선영이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 로우 앵글로 찍었다. 그때 선영이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영국에서 마주한 선영이는 변함없이 밝고 다정했다. 몇 년 후 한국에서 다시 만난 선영이는 여전히 환하고 용감했다. 백화점 사장이 될 거라던 당찬 포부가 떠올랐고 그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06년, 중국 쪽 두만강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갈대밭을 지날 때다. 두만강에 손을 적시며 감격했지만 금희는 불안해하며 왜 이런 곳에 오는지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때 느꼈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되고 처절한 경험을 했던 곳이 국경이었다는 것을. 북한 회령이 가깝게 보이는 중국 삼합에서 점심을 먹을 때 중국 공안이 갑자기 찾아왔다. 옆에 있던 광혁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실감했다. 국경이라는 공간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절박한 순간들로 채워진 공간이었다는 것을.
2008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방문했다. 영국에 위장 망명한 탈북민에 대한 영국 정부의 색출과 추방에 관한 루머가 떠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던 주철이는 만남을 망설였고 주저했다.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성일이와 주철 아내의 설득으로 떠나기 전날 극적으로 만났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노르웨이로 떠나는 우리를 위해 주철 아내가 한국 향기 가득한 도시락을 건넸다. 뭉클했다. 10년 뒤 우린 다시 만났다. 주철 부부는 10년 전보다 더 반갑게 맞이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뭔가를 들고 찾아와서 깊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시차 적응을 못한 나는 구석에서 병든 닭처럼 헤매고 있었다.
금호는 2003년 똘배 시절 만났다. 돌아가신 부모 형제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줬던 고향만이 유일하게 그립다고 했다. 소리 없이 이 땅을 떠났던 금호를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2008년 여름 대책 없이 노르웨이에 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허망하게 돌아왔다. 20여 년이 지나도 만나지 못한 금호가 어디선가 잘살고 있을까.
* 20여 년 셋넷을 거쳐간 다큐영상 감독과 사진작가들은 저들의 의도와 욕심으로 셋넷을 담아갔다. 오원환 교수는 2003년부터 낮은 곳 풀잎 시선으로 셋넷 아이들을 영상에 담고 논문을 쓰고 함께 해왔다. 진정성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품을 자격이 있다.
* 9월 출간 예정인 셋넷 학교 두 번째 이야기 단행본에 실릴 글.
* 2008년 여름 탈남한 셋넷들을 찾아가는 길 낯선 섬나라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