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연습하고 감수성을 훈련하는 대안학교
편견의 바다에 띄운 평화의 배 한 척, 셋넷
셋넷의 배움은 ‘나’를 돌아보고 새롭게 살핀다. ‘나’를 사랑하는 개인, 내 안에 깃든 신비를 들여다보는 개인,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나’의 미래와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아본다.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일매일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성공을 욕망하는 자본주의 전투요원을 양성하는 기술이 아니다. 내 삶의 현장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작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운다. 부모와 교사들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꿈과 의지를 스스로 찾고 키운다.
셋넷이 꿈꾸는 ‘자유’는 자신과 타인에게 무책임하지 않다. 공동체에 무례한 자유가 아니다. 셋넷의 ‘자유’는 관용寬容의 관계 방식이다. 관용은 ‘타인도 나와 똑같은 정도의 진실을 지니고, 지켜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기 소르망)’하는 적극적인 이해와 수용의 태도다. 일상에서의 관용은 법정스님 말씀처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가능하다. 나와 적이라는 욕망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자본시장 너머 비非 적응이 필요하다. 부단한 체험과 훈련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구체적인 자유의 몸짓이 관용의 실체다.
셋넷이 품는 또 하나의 꿈은 ‘소통’이다. 자기다움으로 채워가는 자유는 타인의 권위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를 돌보는 자치自治는 내 몸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름과 차이들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고 드러나는 곳이 몸이다. 몸 안팎에서 수많은 갈등과 조정과 타협이 이루어진다. 타자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맺고 풀기 위해 몸이 다름과 차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배려하는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낯섦을 적대시하고 새로움에 무뎌져 감동을 잃어버린 몸들을 되살려야 한다. 셈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야 평등하고 따뜻한 소통이 가능하다. 셋넷은 사소하고 하찮은 각자의 몸들에서 시작한다. 분석과 이론에 의지하지 않는다. 내 몸을 살피는 작업에서 다른 것들과 소통하려는 삶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