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forget-me-not) 별

by 박상영

고향을 떠나 기나긴 여정 끝에 셋넷에서 만났던 제자가 젊은 나이에 죽었을 때, 벗 지훈이 밤하늘 별로 나를 위로했다... 영양의 밤하늘이 생각납니다. 아, 그 별 '죽은 자는 별이 된다 그러니 네가 죽은 만큼, 밤하늘은 아름다울 것이고' (사이하테 타히) 영양의 밤을 떠난 사람을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품어주는.

영화 <50대 50>의 주인공은 27세의 평범하고 착실한 직장인이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지역 라디오방송국 작가로 취재에 열심이다. 생존확률 50%의 희귀한 암에 걸리자 일과 주변의 잡다함을 담담하게 정리한다. 하지만 동거녀의 불륜과, 술과 여자에 꽂혀 막막한 좌절을 외면하는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의 심정을 살피지 않는 엄마의 이기적인 호들갑에 지쳐가며 환멸에 빠진다. 가식적이고 습관적인 배려보다 유머와 솔직함이 생명에 더 가깝다.(하지만 일상에서는 손해 보고 오해를 불러올 테니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우린 늘 타인에 대한 예우를 학습하고 교양인의 덕목을 머리로만 활용하는 습習이 몸에 배어 있다.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과 절망이 와닿지 않고 가슴 깊이 저미지 않는 까닭인지 모른다. 발랄하지만 섬세하고 당돌하지만 유연한 기운이 무관심한 사랑을 되돌리고, 이기적인 사랑을 조건 없는 우정으로 나아가게 한다.


영화 <카라멜루> 주인공 역시 27살이고 자신의 음식 만들기에 열정적인 예비 셰프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버려진 개와의 인연으로 소동을 빚지만, 골칫덩이 개가 자신의 숨겨진 병을 발견하게 도우면서 종을 초월한 우정을 맺는다. 마침내 셰프가 되어 가슴 벅찬 축제의 삶을 펼치려는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뇌종양이 찾아온다. 몇 년 전 아내를 떠나게 했던 병인지라 주인공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건네온다. 절망은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불쑥 거칠게 찾아와 삶의 시간을 속절없이 애태운다. 살면서 죽음을 가까이 느끼지 않으려 외면한다. 이기적인 사랑과 불필요한 탐욕과 뻔뻔한 폭력이란, 언제 찾아올지 누구에게 당도할지 모를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오만한 표정과 이율배반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생애 처음 탄 비행기는 군대시절이었다. 일주일 전 강하 훈련 지침이 하달되었다.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확률은 2만 분의 1이라 죽는 게 더 어렵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정작 비행기를 타는 날이 다가오면 확률은 쏜살같이 흩어졌다. 급기야 당일 비행기를 타니 확률은 50대 50이 되고, 비행기 안의 동료들은 갑자기 욕심 없는 우정으로 서로에게 생명줄을 연결한 채 창공에서 뛰어내렸다. 느닷없이 찾아온 절망과 좌절은 대상과 종을 초월한 뜻밖의 우정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찾는다. 주인공 셰프에게 요리의 꿈을 심어준 엄마는 꺼져가는 생의 불꽃으로 비틀대는 아들을 다정하게 품으며 위로를 건넨다. ‘음식은 보살핌이야. 우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요리해.’


얼마 전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십 수년 전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태산보다 무겁고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영화 <봉오동 전투>)이 떠올랐다. 영양 집 마당에서 보았던 밤하늘 별들이 떠올랐다. 하늘과 땅 사이에 우주가 있다는데, 서둘러 떠난 별들은 매 순간 우주를 여행하다 싫증 나면 별똥별로 다시 지구 집으로 돌아오는 걸까.


누군가 서둘러 떠나간 뒤

오래 남아 빛나는 반짝임이다

손이 시려 손조차 맞잡아 줄 수가 없는

애달픔

너무 멀다 너무 짧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잡히지 않는다

오래오래 살면서 부디 나

잊지 말아다오.

- 나태주,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