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

열이틀간의 몽골 여행기_들어가며

by 혜리

해외여행에 큰 미련 두지 않고 살아왔다. 딱히 그럴 여유도 없었다. 여행을 가면 삶이 바뀌고 내가 바뀌는 것처럼 구는 말들을 믿지 않았으므로 서럽지도 않았다.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을 때 가면 되지 조바심 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나가 볼 엄두를 내게 된 건 회사원이 되고도 1년이 지난 후였다. 장기 연차를 낼 정도의 용기가 생겼다. 어디든 한 번은 갔다 올 만한 돈도 있었다. 문제는 어디를 가느냐였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유럽도, 일본도, 미국도 아니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밤이면 별이 반짝이고,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넓게 펼쳐진 무언가가 있는 그런 대자연. 사막을 꿈꿨다.


세계 3대 사막 중 가장 가까운 건 몽골의 고비사막이었다. 몽골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려웠다. 계절을 잘 골라야 하는 것도 모르고 비행기표부터 끊는 바람에 나중에 취소 수수료를 날리기도 했다. 여행 한 번 가 본 적 없는 주제에 좀 난이도 낮은 여행지부터 가라는 타박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여행은 의미가 없었다.




몽골에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여행 앓이를 했다. 그 시공간이 꿈결 같아서, 당장, 한 번 더,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히말라야, 라다크, 아타카마, 사하라, 스카프타펠 같은 지명들을 한참 주워섬겼다. 지도 어플이 온통 노랗게 물들도록 태그를 달았다. 막연하게 꿈꿔왔던 거대한 자연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강해져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여행 후 내가 성장한다든가, 그걸 보러 갔을 때 특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든가, 그런 부차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곳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돈을 충분히 많이 벌었을 때, 내가 원하는 진로에 안착했을 때, 안정적으로 독립을 이뤘을 때 같은 불확실한 미래의 시점으로 미뤄두고 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내가 갖고 있는 욕망들 중 가장 순수했다. 심지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조차 지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을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장소로 떠나는 일을 통해 뭐 별다른 걸 이루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자체를 원했다.


열이틀간 쓴 여행일기를 다듬어 내놓는다. 여행 정보를 담은 실용적인 글이기보다는 그때 내 마음을 담은 에세이이기를 바랐다. 자는 시간을 아까워할 정도로 기록했으니 어느 한 줄 정도에는 내가 원하던 것이 담겨 있지 않을까? 기록을 남기고 싶어 몽골에 간 게 아니었지만 기록을 남기는 것 역시 나의 또 다른 본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첫 여행의 기록이 인생의 첫 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되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일부러 애쓰고 노력한 것들은 이뤄지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만들어낸 것들은 나도 모르게 쌓여서 뭔가가 되어 간다. 내가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한 노력은 사실은 언제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것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이 책이 ‘여행 가세요, 두 번 가세요’라는 메시지로 오독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삶이 좋은지 말할 정도로 내 삶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가슴속에 사직서와 비행기 표와 긴긴 밤 천장을 보는 절망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지금-여기를 떠나든 떠나지 않든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떻게 살아가든 그 반대편의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이런 궤변으로 소심한 삶을 합리화하는 자에 불과하다.




※ 이 글은 독립출판물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개정판)’의 원고이며, 현재 샘플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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