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첫날

열이틀 간의 몽골 여행기(3)

by 혜리


몽골의 수도는 울란바토르다. 울란바토르란 ‘붉은 영웅’이란 뜻으로, 몽골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영웅인 수흐바타르를 기리는 이름이다. 한때 소련의 영향이 미쳤던 몽골의 수도에는 러시아 양식의 건물들이 키릴 문자 간판을 단 채 들어서 있다.

이 도시의 한가운데에는 울란바토르의 알파벳 표기(Ulaanbaatar) 형상의 빨간 조형물이 있다. 여행 첫날, 우리 일행 다섯 명은 그 앞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자, 다음!”


김이 외치자 선이 어슬렁어슬렁 조형물로 걸어가 ‘t’ 앞에 양 팔을 벌리고 섰다. 분명 미리 고심한 자세였다. 환호와 야유, 그리고 카메라 셔터음이 쏟아졌다. 첫 순서로 적당히 기념촬영을 끝낸 나는 괜히 손해 본 기분이었다. 이들의 포즈 욕심이 예사롭지 않았다. 앞으로 무수히 셔터를 누르게 될 거라는 예감이 스쳤다. 아, 이것은 사진쟁이들의 여행이겠구나.


일행 다섯 명이 모두 모인 건 국영백화점 앞 분수대에서였다. 전날 새벽 입국한 우리 셋이 열 시까지 늦잠을 자는 사이 나머지 일행 둘은 나랑톨 시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랑톨 시장은 없는 게 없는 재래시장이라고 하지만, 혼자서 가기에는 위험 요소가 많아 여럿이 함께 다녀오는 게 좋다. 시장에서 산 미니기타를 들고 모자 두 개를 겹쳐 쓴 채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이하는 김은 현지 상인 같았다. 그 옆에는 호가 딱 봐도 비싸고 커 보이는 카메라로 분수대를 찍고 있었다.


“그, 사막에서 힘들다고 찡찡거리면 안 돼요?”


일행이 모여 몽골 전통 공연을 보러 가던 길에 김이 내게 한 말이다. 지금의 김이라면 내게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을 텐데, 아마 본인이 생각하는 ‘힘들다고 찡찡거리는 사람’의 조짐을 내게서 발견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서 ‘힘들다고 찡찡거릴 것 같은 사람에게 미리 잔소리를 하는 사람’의 조짐을 발견했다. 그 뒤로 나는 여행 내내 나보다 나이가 열 살 가까이 많은 김이 조금이라도 꼰대스러운 말을 할라치면 일말의 어려움 없이 받아쳤다.
물론 김은 장점도 많은 일행이었다. 능청스러운 말투로 여행 내내 우리 일행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국어 선생님이라는 김의 소개를 듣고 나니 왠지 그 직업의 이미지마저 바뀌는 기분이었다. 김 선생님의 수업은 왠지 학생들이 끊임없이 빵빵 터지는 시간일 것 같았다. 우리와 합류하기 전에 이미 몽골의 홉스골 지역을 약 열흘간 다녀온 김은 자신이 이곳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뻥을 늘어놓으며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저녁을 먹으러 북한 음식점인 ‘백화관’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거리에서 택시 캡을 단 차를 본 기억이 없었다. "김, 여기서 택시는 어떻게 타요?" 우리가 묻자 김이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로 손을 뻗었다. 택시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누굴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것인가. "그냥 이러고 기다려야 해요." 아니 뭐라는 거야 저 사람이.
놀랍게도 문짝이 찌그러진 차가 나와 김 앞에 멈춰 섰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어떤 차든 범퍼나 차창 한 구석에 상처 하나쯤은 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평범한 차였다. 이 차가 택시라는 걸 구분할 수 있는 어떤 표지도 없었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찾은 해리 포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김은 우리에게 도로를 건너는 방법도 알려줬다. 그 방법이란 바로 ‘무단횡단’. 아주 느리고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어쭙잖게 뛰면 오히려 사고가 난다고 했다. 느리게 걸어야 차들도 멈춰 준다고. 울란바토르 시내에 대체로 신호등이 없는 걸 보면 김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급해서 종종거리고 뛰어다니곤 했다. 후다닥 뛰어가다 보면 내 등 뒤로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들이 부아앙 지나갔다.
나와는 달리 선은 이미 울란바토르의 교통질서에 적응한 듯했다. 내가 후다닥 길을 건너고 뒤를 돌아보면 선이 어슬렁어슬렁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 번쩍이는 헤드라이트를 보면 오금이 저릴 만도 한데 태연한 모습이었다. 여행사 직원이라는 선은 아프리카를 포함해 수많은 여행 경험이 있었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적응이 빨라 보였다.




훗날 게르 천장 덮개를 능숙하게 여닫는 선을 우리는 ‘게르 주인 아들’, 줄여서 ‘게르주아’라고 불렀다. 그에게는 몽골 여행이 점점 붐이라면서, 새로운 몽골 여행 상품을 계획하는 사업 꿈나무 ‘썬사장’의 모습도 있었다. 우리끼리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면 조리를 책임지는 한식조리사 자격증 보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의 가장 큰 역할은 소니 최신 모델 카메라를 들고 크고 아름다운 화질로 우리를 찍어주는 ‘썬포토’였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걷는 현과 연.


우리 중 유일하게 대학생인 연은 사진으로 여행을 남기는 데 적극적이었고 ‘인스타 감성’에 예민했다. 김과 함께 우리 팀에서 제일 적극적인 모델이었다. 연이 나의 사진이나 선곡을 마음에 들어해 주면 왠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연의 최애 가수가 ‘볼빨간사춘기’였으므로 자연스레 우리의 뮤즈는 볼빨간사춘기가 됐고, 우리 여행의 BGM은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이 됐다.


현이 몽골행 티켓을 끊게 한 노래가 바로 ‘여행’이라고 했다. 현은 초식동물 ‘야크’라는 별명도 웃어넘기는 성격 둥근 대인배였다. 장난기 넘치면서도, 위험한 곳으로 사진 찍으러 철없이 달려가는 우리들을 유일하게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일 옷을 빨아 널면서도 연의 것까지 챙겨주는 현을 나는 늘 경이로운 눈으로 보았다. 나는 늘 내 것만 챙겨 기록하고 찍느라 바빴다. 저렇게 남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처럼 뭔가를 기록하는 일은 사치다. 현을 볼 때다 나의 철없음을 새록새록 깨닫곤 했다.


일행 중 해외여행이 처음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들이 감탄한 나의 기록변태성은 실은 처음 여행하는 자의 촌스러움이었다. 김과 선이 일정을 조정하거나 공금을 정리하는 골치 아픈 일을 도맡아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현이 세심하게 비상약과 청결과 안전을 챙겨 주지 않았다면, 연이 계속 물건을 흘리는 내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면, 내 몽골 여행이 안녕했을까.




첫날, 아직은 다섯이 함께하는 여행이 어떤 모습일지 모른 채 울란바토르의 밤거리를 걸었다. 백화관에서 숙소까지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백화관에서 들고 나온 대동강맥주 빈 병을 들고 있었다. 대동강맥주 병을 사막에 가져가 사진 소품으로 쓰자던 농담을 진짜로 주워 담는, 쓸데없이 실행력 좋은 청춘들이여.


울란바토르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광해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별은 아직 많이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엔 화성 혼자 반짝거렸다. 키릴 문자로 쓰인 간판을 단 펍에서 노란 불빛과 음악이 새어 나왔다. 공기는 약간 추울 정도로 선선했다.



※ 이 글은 독립출판물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개정판)’의 원고이며, 현재 샘플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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