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한가운데 텐트를 쳤다

열이틀 간의 몽골 여행기(4)

by 혜리



울란바토르에서부터 고비 투어 첫 목적지인 ‘차강소브라가’까지는 약 490km다.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좀 더 먼 거리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부산스레 출발해야 해 떨어지기 전에 첫 목적지에서 원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첫날 우리는 아침 여덟 시 반에 장을 보러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여행에서는 모든 게 좀 늦어지기 마련. 아홉 시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사에서는 우리 팀과 다른 한 팀을 같이 다니도록 묶어줬다. 두 팀은 각자 다른 차를 타고 다녔지만 숙소도 일정도 같았기 때문에 여행 내내 매일 얼굴을 봤다. 편의상 앞으로는 그 다른 팀을 ‘사진작가 팀’이라 부르겠다. 사진작가와 모델로 이뤄진 팀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형마트를 만나기 힘들 게 뻔했기 때문에 장을 보며 자꾸 욕심을 부리게 됐다. 짐이 금방 불어났다. 문제는 그 귀중한 식량을 실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 스타렉스 트렁크는 우리의 캐리어로 이미 만석이었다. 결국 캐리어 두 개는 스타렉스 위에 싣고 빈 공간에 식재료를 넣기로 했다.


가장 큰 캐리어들이 차출됐는데, 그 말은 호기롭게 들고 온 내 24인치 캐리어가 차출 1순위라는 소리였다. 이미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과연 내 옷들이 스타렉스 위에서 멀쩡할까? 되뇌는 사이 이미 드라이버는 스타렉스 위로 올라가 나와 김의 캐리어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주차장에 있던 몽골인 중년 남성들이 드라이버의 모습을 보더니 말을 걸었다. 그들은 어디선가 비닐 한 폭을 가져와 스타렉스 위로 건넸다. 캐리어 위에 비닐을 덮으라는 거였다. 팔뚝이 부르르 떨리도록 짐을 묶는 드라이버를 도와 로프를 잡아당겨 주기도 했다. 원래 알던 사이 같지는 않았다.


저게 고비의 드라이버 간의 우정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남성들이 고비 투어 드라이버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게 정말 우정이네 유난 떨 만한 장면인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제멋대로 훈훈한 마음이 됐다. 캐리어 정도는 좀 젖어도 괜찮았다. 나도 고비의 여행자니까!




본격적으로 여행길이 시작되자 들뜬 우리는 가이드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가이드는 우리와 나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청년이었는데, 자신을 ‘자가’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뿔테 안경을 쓰고 키가 큰 자가는 한국인 같은 데가 있었다. 몽골인과 한국인이 워낙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자가는 유난히 그랬다. 우리 일행과 자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다른 여행자에게 보여주고 몽골인 가이드를 고르라고 하니 자가가 마지막 순서로 꼽힐 정도였다. 참고로 첫 번째는 나였다.





마트를 벗어나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푸른 언덕이 보였다. 드문드문 게르와 양 떼도 보였다. 사람들이 ‘몽골’ 하면 생각하는, 정말 바로 그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창문 밖을 구경하기 바쁘던 일행들도 몇 시간이 지나자 차츰 잠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멀어지자 인터넷이 끊기는 바람에 더 이상 노래를 스트리밍할 수도 없었다. 그날의 디제이였던 나는 핸드폰에 다운로드해둔 이삼 년 전 노래로 근근이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더 잔잔한 노래가 없을까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던 중, 차가 멈췄다.


시동이 걸리다 마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고, 드라이버가 문을 열고 나갔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버가 보닛을 열어보고, 자가가 뒤따라 나가 뒤에서 차를 밀었다. 선은 이미 문을 열고 함께 밀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자가는 손을 저으며 다시 차에 탔다. 차는 회생불능이었다. 투어를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 밖으로 나와 보니 빗방울이 떨어졌고, 바람도 미친 듯이 불고 있었다. 거칠 것 없는 초원이라 당연히 바람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몸을 피할 만한 건물도, 당장 바꿔 탈 차도 없었다. 여행이 여기서 끝인 건가,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다른 차에 연락이 닿았고, 미리 준비해 온 원터치 텐트를 펴고 여기서 잠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 초원에서 한 줌만 한 원터치 텐트를 치려면 고정해 줄 누름돌이 필요했다. 초원에 돌이 굴러다니지 않았으므로 누름돌 역할은 우리가 했다. 우리 다섯 명은 텐트 안에 동그랗게 앉아서 양 팔을 텐트 벽면에 붙였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텐트를 조금이라도 지지하기 위해서였다. 원터치 텐트란 성인 다섯 명이 들어앉으면 꽉 차는 면적이었다. 우리가 그때 조금만 더 친했다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만들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바람이 가라앉았다. 텐트 안은 아늑했고 바깥으로는 푸르스름한 그림자를 드리운 언덕들이 보였다. 우리에게는 칭기즈칸 보드카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었다. 자가가 닭볶음탕을 만들어서 텐트 안으로 넣어줬다. 마트에서 사둔 레토르트 제품이었다. 밖에서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만든 음식이었다. 바람에 불꽃이 휘날리는 휴대용 버너로 닭볶음탕을 데우는 자가가 안쓰러웠지만, ‘전 몽골 사람이니까요’라며 오히려 나에게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양은 조금 부족했지만 맛있었다.


사실 그때는 막연히 모든 물자가 부족하니까 당연히 음식도 모자라겠거니, 했다. 나중에는 우리 여행사가 유독 먹는 데 드는 비용에 인색했다는 말을 듣고는 여행사가 식비를 쥐어짠 탓이었다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우리가 낸 비용 자체가 별로 많지 않았다. 저렴한 비용에 투어를 잘 예약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식비가 풍족하지 않으면 당장 내가 먹을 음식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나를 ‘손님’으로 챙겨야 하는 가이드와 드라이버의 몫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이드가 눈치를 보면서 본인과 드라이버의 몫을 더 줄여 우리에게 줄 수밖에 없다.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음식과 술을 먹고 떠들던 우리는 어느새 노곤 노곤해져서 텐트 바닥에 쪼그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취기를 틈타 다들 ‘초원 화장실’에도 한 번씩 다녀왔다. 초원 화장실이 뭔지 너무 많이 궁금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거니까.


그렇게 두세 시간을 보냈을까, 무사히 다음 차가 왔고 우리는 원터치 텐트와 우리의 첫 번째 차를 초원 한가운데 남겨두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 뒤로 모래폭풍을 맞거나 오프로드에 차가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다행히 여행을 중단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새로 우리와 함께하게 될 드라이버의 이름은 빌게였다.



※ 이 글은 독립출판물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의 개정판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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