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틀 간의 몽골 여행기(6)
이런 것이 내 카메라에 담겨도 되나,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첫 은하수, 차강소브라가
차강소브라가를 보고 나서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은하수가 진해진다고 한다. 우리들은 이왕 기다리는 거 새벽 한 시 정도까지는 버티기로 마음먹고 보드카를 꺼냈다. 참, 몽골은 보드카가 유명하다.
밤 열 시 반쯤 되었을까, 갑자기 사진작가 팀의 가이드가 들어와 별을 봐야 한다고 우리를 재촉했다. 달이 뜨면 별이 보이지 않을 테니 얼른 봐야 한다며, 오늘처럼 별이 보일 일은 별로 없다고 했다. 급히 장비를 챙겨 게르 밖으로 나왔다. 게르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시선은 자동으로 하늘에 고정됐다. 고개를 든 채 하늘을 보며 걷다가 넘어질 뻔했다.
머리 위로 허연 줄기가 흐릿하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평생 본 것 중 가장 많은 별이 반짝거렸다. 은하수였다. 숙소에서 적당히 떨어진 장소로 이동하는 잠깐의 시간조차 아까웠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켜 설정을 조정했다.
나름대로 실습을 해봤는데도 조작이 더뎠다. 마음먹은 것처럼 수평이 금방 맞춰지질 않았다. 구도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30초의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나도 이 시간에 다른 일행처럼 돗자리에 누워서 별을 눈으로 담는 게 훨씬 이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필사적으로 설정을 바꿔 보던 중, ISO를 조금 더 높여 찍어본 사진에 은하수가 선명하게 담겼다. 숨을 멈췄다. 카메라 화면으로 보이는 은하수가 그렇게 빛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것이 내 카메라에 담겨도 되나,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 놓고 기다릴 때마다 20, 30초의 짧은 틈이 생겼다. 그때마다 돗자리에 누워 아득한 밤하늘을 봤다. 작년에 인스타그램에 충동적으로 적어 내려갔던 버킷리스트의 첫 구절을 이뤘다. 삼각대 아래 누워 사막의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
말로만 다짐했던 것을 실제로 이뤄낸다는 건 얼마나 나를 신뢰하게 되는 경험인가. 나는 내가 원한다면 사막 한가운데로 나를 데려올 수 있구나. 스스로의 욕망을 끝까지 외면하고 억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버려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밤 차강소브라가 주변에는 은하수 말고도 찍을 것이 정말 많았다. 은하수 오른편으로는 번개가 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북두칠성도 선명했다. 사람과 은하수를 함께 찍는 ‘인증샷’도 꼭 찍고 싶었다. 우리가 허둥지둥 삼각대 위치를 바꿔 가며 헤매는 사이 은하수는 서서히,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사라졌다. 별똥별을 열일곱 개나 봤다는 김과 현, 연을 보니 맨눈으로 하늘을 더 오래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교훈을 얻었다. 보이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최대한 담아야 한다. 최소한 은하수를 찍을 때만큼은 그렇다. 사실 은하수뿐 아니라 모든 야외촬영에 해당되는 말인데, 날씨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은하수를 마주친다면 하릴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일 따위 없이 은하수에 집중하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그리고 나는 은하수를 위해서라면 삼겹살도 포기할 수 있는 희대의 은하수 빠순이가 되는데...
가장 선명했던 은하수, 홍고린엘스
이틀 뒤, 또다시 은하수를 만났다. 홍고린엘스의 거대한 사구를 오르고 돌아온 저녁이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홍고린엘스는 거대한 모래 사구다.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모래사막의 모습은 홍고린엘스에 가서야 볼 수 있다.
스타렉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초롱초롱하게 뜬 은하수였다. "아니, 이러면 나 못 잔다구!" 하루종일 홍고린엘스를 오르느라 모래투성이가 된 주제에 또다시 사진을 찍겠다고 절규하는 나를 김이 다독거렸다. 일단 씻고 하자고. 그래. 안 씻으면 일행들에게 민폐다.
샤워실에 다녀오자마자 삼각대를 펴고 앉아 은하수를 찍었다. 옆에서는 삼겹살 파티가 한창이었다. 자가가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다가와 저녁을 권했다. “자가, 괜찮아요. 전 나중에 컵라면이라도 먹을게요.” “네에?” 그는 기겁했다. 나를 잘 챙겨줘야 하는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갔지만 나는 정말 밥보다 은하수가 중요했다.
사진을 한 스무 장쯤 더 찍었을까, 선이 다가왔다. 선은 우리 팀에서 나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DSLR을 가져온 벽돌카메라 동지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분명히 내게 ‘저녁을 포기하고 별을 찍겠다’고 했는데, 어느새 멀쩡히 밥을 먹고 있었다. “가서 밥 먹어. 난 무선 릴리즈 연결해서 계속 촬영되게 설정해 놓고 밥 먹었어.” 배신감을 숨긴 채 쿨한 척 일어났다. 같이 굶자더니, 배신자 썬포토.
그래도 선이 아니었다면 나는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나서야 컵라면을 먹었을 것이다. 삼겹살도 먹지 못했겠지. 밥을 먹고 나자 금세 구름이 몰려와 은하수를 가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구름이 다시 걷히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은하수가 오래오래 떠 있었다. 일행들은 에어소파를 펴고 누워 별자리를 찾았다. 모두가 숙소로 들어간 늦은 새벽에야 더 버티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며 카메라를 접었다.
포털에 몽골을 검색하면 뜨는 첫 번째 연관검색어가 은하수다. 은하수가 뭐기에 다들 그렇게 동경하는 걸까. 나는 왜 은하수를 동경했을까.
아주 크고 경이로운 것,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면 삶의 의욕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다. 근데 그런 거 없었다. 내가 우주 안에 있구나, 하는 실감 따위 없었다. 그런 거창한 생각은 실제 풍경을 마주하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저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뿐이었다.
지금은 안다. 지난 8월 몽골에서 은하수를 찍고 난 뒤, 나에게는 매년 여름마다 은하수를 찍으러 광해가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는 걸. 그런 무한히 아름다운 것들을 평생 보러 다니고 싶어 졌다는 걸. 오래, 열심히, 돈을 벌며 살아야 할 단순하고도 강렬한 이유가 하나 생겼다는 걸.
※ 이 글은 독립출판물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개정판)’의 원고이며, 현재 샘플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 책 관련 소식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