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틀 간의 몽골 여행기(12)
바양작은 붉은 돌로 이루어진 절벽 지형이다. 석양을 받으면 빨갛게 빛나, 영어 이름이 'flaming cliff'일 정도다. 공룡 화석이 난 곳으로 유명하다. 비슷한 지형인 차강소브라가보다 더 길이 좁고 미끄럽다. 처음 바양작에 발을 딛자마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좁고 기울어진 외길을 걷던 중 모래바람이 불었다. 조금 세다 싶은 정도였던 바람은 점점 강해졌다. 내 몸을 밀어내는 힘에 저항하는 게 점점 버거웠다. 순간 이대로 정말 밀려서 미끄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붉디붉은 천 길 낭떠러지였다. 함께 있던 현과 본능적으로 주저앉았다. 날아가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글라스 사이로 모래알이 파고들고, 입을 벌리지도 않았는데 모래가 씹혔다. 맨살이 드러난 곳으로는 끊임없이 모래알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을 버티고 모래알 난타를 맞으며 눈을 꼭 감고 웅크려 있었다. 톡 치면 날아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 상태였다. 일어날 수 없었다.
모래바람을 맞는다는 건 그저 모래가 묻어 찝찝한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팔과 다리에 붉은 자국들이 점점이 생길 것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아팠다. 바람이 멈추는 걸 비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작고 초라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온 몸으로 알았다.
그때 살짝 뜬 눈으로 사람 손이 보였다. 자가였다. 자가는 나와 현의 손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함께 움츠려 앉았다. 그렇게 버티기를 또 얼마간. 그는 무서워하는 우리를 다독여 외길을 함께 건넜다. 오랫동안 신발장에 방치해 둔 내 런닝화가 자갈밭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자꾸 미끄러졌다.
나머지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왼쪽에서 불어와 오른쪽 벼랑으로 나를 밀어대는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밀어대며 걸었다. 일행들이 바람을 피하고 있는 암벽이 보였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서자 거짓말처럼 폭풍이 잦아들었다. 암벽으로 다가가 웅크렸다.
선이 멍하니 쪼그려 앉은 우리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진심으로 대답했다. 아니. 안 괜찮았다. 돌아가야 했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더 강해지기 전에 피할지를 이야기하던 순간 빗방울이 떨어졌다. 자가가 여기만 넘어가면 뷰포인트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철수하자고 했다. 김과 선이 자가와 함께 건너갔다.
말도 안 됐다. 여기까지 왔는데, 자연 절경만큼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즐겨보고 가려고 했는데, 그중 마지막 순서인 바양작에서, 그것도 가장 끝에 있는 뷰포인트를 몇 걸음 전에 못 보고 포기하다니. 내가 이런 순간에 포기를 하다니. 하지만 방금 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바람을 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불가항력이었다.
아쉬움에 카메라를 들어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라도 찍어 보려 했다. 그런데 카메라 화면이 온통 까맸다. 현재 카메라 설정만을 보여주는 기본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뷰파인더의 고무가 떨어지고 그 자리에 빨간 모래들이 들어차 있었다. 렌즈는 줌링을 돌릴 때마다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아직 4일차밖에 안 됐는데. 이 곳도 아직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황급히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그제야 온몸에 가득한 모래를 수습해 볼 정신이 들었다. 세수하듯 모래를 털어 봤다. 현이 외쳤다. ‘네 귀에 모래가 엄청 많아!’ 슬쩍 손으로 귓바퀴를 쓸어 봤다. 하지만 어차피 손도 모래투성이라 이게 귀에서 묻은 모래인지, 손에 있던 모래인지, 바람 때문에 방금 묻은 모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뷰포인트를 보러 갔던 일행들이 돌아오고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바람이 잠시 약해지는 순간을 노려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모든 것이 조금 무서워진 나와 현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김이 괜히 우리 옆에 붙어 걸었다. 돌아오는 길을 반절 이상 지난 후에는 억울함이 치밀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으악, 으아아악.
패잔병들처럼 차로 돌아온 우리는 물티슈로 정신없이 모래를 닦아냈다. 나와 현은 자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무섭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자가는 특유의 무심하고도 당연하다는 말투로 ‘예, 무서웠죠’라고 답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는데도 한편으로는 흥분됐다. 언젠가 소설을 쓴다면, 인물이 모래바람을 맞는 장면을 쓴다면, 정말 핍진성 있는 묘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차로 돌아오자마자 에버노트를 켰다. 시간이 흐르기 전에 방금 느낀 것을 고스란히 적어 두고 싶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현이 그날 저녁 숙소에서 나의 기행을 고발했다. ‘난 봤어, 그 와중에 쟤가 차에 타자마자 글을 쓰는 걸!’
우리의 차가 바양작을 떠났다. 바양작 초입에 있던 상인들도 각자의 차 안으로 대피한 후였다. 사고 싶은 기념품이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멀리 보이는 바양작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 됐다. 이제 바양작 사진을 다시 보면 그 아찔함만 떠오를 것 같았다.
돌아온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채로 모래를 씻어내러 숙소를 나섰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둥글게 아치가 진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는 온전한 모습의 무지개를 본 적 있던가. 너른 몽골의 벌판에서만 볼 수 있는 반원이었다.
하늘의 다른 한편에는 구름 너머로 빛줄기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천사라도 강림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보며 터덜터덜, 근처 다른 캠프에 위치한 샤워장까지 상당히 먼 길을 걸었다.
※ 이 글은 독립출판물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개정판)’의 원고이며, 현재 샘플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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