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하다가 퇴사 못 한 이야기

열이틀 간의 몽골 여행기_나오며

by 혜리

내 몽골 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다만 질문이 하나 남았다.

그래서 퇴사는 어떻게 하지?


오늘은 몽골행 비행기를 탄 날로부터 정확히 일 년 후, 2019년 8월 4일이다. 나는 아직 퇴사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또 나름의 이유로 꼭 독립해야 했는데 독립엔 월급이 필요했기 때문에, 또 회사를 나오더라도 먹고살 수 있도록 준비한 게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 이유들에 대해 언젠가 또 풀어놓을 기회가 있을 거다.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을 하자마자 갈데없는 원망이 솟구쳤다. 왜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버티고 참아야만 해. 흠칫 놀랐다. 원망을 품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게 목표였건만.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 이곳에 영원히 남는 상황이야말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었다. 그토록 굳게 다짐한 마음을 저버리겠다니 내게 배신감이 들었다. 내 결심은 그렇게 우스운 게 아니었어.


열심히 나를 달랠 말을 지었다. 그때 꿈꿨던 삶을 포기할 만큼 지금의 내가 바라는 것도 있는 거야. 이것도 나름대로 나의 용기인 거야. 여기 있는 시간도 무의미하지 않아. 나를 어디 어두운 구멍 안에 파묻는 선택이 아니야. 당장의 선택에 대해 누가 어떤 식으로 나를 보고 평가하든 나는 이대로 영영 가만있지 않을 거야. 쉽지 않았다. 마음을 벅벅 긁는 느낌, 아팠다.


퇴사를 미루는 선택도 나를 믿어야 해낼 수 있는 거였다. 어느 쪽이든 그 반대편의 삶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난 좀 더 버텨 보기로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첫 책을 다시 고쳐 만드는 중이다. 여전히 구체적으로 그려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실마리를 잡은 기분이 든다.


영원히 여행만 다니며 살 수는 없다. 가끔 세상의 가장자리로 날아가더라도 휴가가 끝나면 꼬박꼬박 돌아와야 하는 평범한 인간. 그런 내가 쓰는 모든 여행기는 반드시 샌드위치 구성이다. 퇴사하고 싶었는데 못 하고 몽골에 갔어요. 몽골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열심히 놀았어요, 다녀왔는데 답 없는 현실은 똑같았어요. 근데 갑자기 퇴사고 뭐고 책 만드는 게 너무 재밌네? 사실 이게 이 책의 진짜 요약문이다.


개정판을 만들다 보니 웃겼다. 마켓에 나갈 때마다 나는 내 책의 소개문구에 ‘두고 온 일상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썼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일행들은 이런 사람이고, 대자연을 보니 우주의 미아가 된 것 같았고, 모래폭풍과 오프로드가 힘들었고, 화장실 가는 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철저하게 여행에 대한 얘기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그 직전까지 중대한 삶의 피크에 몰려 있던 인간이, 이렇게까지 아무 생각이 없어도 돼?


신기하게도 한때의 꿈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사라졌다. 독립출판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정의를 실현하거나 세상의 뒷얘기를 알게 되거나 똑똑해 보이는 신분을 획득하는 것보다, 나만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고 풀어놓기를 원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걸 하고 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면 방법은 너무 많은 세상이다. 내 글을 보여줄 길이야 언제나 있었지만 내겐 얘깃거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몽골 여행은 내게 시작점이 돼 줬다. 그게 한없이 고맙다.


이게 바로 석경이라는 퇴적암입니다. 각 시기마다 다른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졌죠. 여기가 언시생기가 끝나고 독립출판기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층이 바뀌는 경계선에 반짝이는 광물 층이 얇게 쌓여 있죠? 이게 몽골 여행기예요.


2019년 8월 4일



※ 이 글은 독립출판물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개정판)’의 원고이며, 현재 샘플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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