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형에겐 해결 알고리즘을, 감정형에겐 공감을
#1
4개의 혈액형을 통해 성격을 예측하고 파악하는 것은 이젠 옛날 일이다. 혈액형보다 4배나 구체적인 16가지 유형의 MBTI는 이제 대표적인 성격의 명함이 되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MBTI를 맞춰보거나, 또는 MBTI를 먼저 물어보고 그를 바탕으로 성격을 예측하는 일은 일상 속에 녹아들었다.
MBTI에서 가장 흥미롭게 비교가 되고 있는 유형은 T형과 F형이라고 생각한다. 상황별 T형과 F형의 반응에 관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 '나 다쳤어.'라는 말에 F형은 '어떡해, 아프겠다.'라고 반응하는 반면 T형은 '병원 가 봐.'라고 반응한다. '나 우울해서 머리 잘랐어.'라는 말에 T형은 '얼마나 잘랐어? 사진 보내봐.'라고 반응하고 F형은 '뭔 일 있었어?'라고 반응한다.
T형은 사고형, F형은 감정형이다. T형은 사실과 진실 위주로, F형은 관계와 사람 위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한다. T형과 F형은 서로의 다른 반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유형의 반응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같다며 맞장구를 친다.
#2
외로울 적에 심리학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 인간관계에 많이 지쳐 있던 참이었다. 학교에서 부딪치는 여러 관계들에 의한 피로감은 쌓여갔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려도 이 사람만큼은 내 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예상을 보란듯이 빗나갔다. 기댈 곳이 하나 없던 시기에,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켰고, 심리학은 인간관계를 좀 더 슬기롭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맥락 없이 그저 괜찮아, 좀 더 쉬어도 돼 등의 근거가 부족한 예쁜 말을 가득 담은 힐링용 에세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꽤나 냉소적이었던 나를 최소한의 납득은 시켜줄 탄탄한 저술서가 필요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저서 위주로 전문성을 갖춘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신기했다. 무엇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같은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향이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방식은 달랐다. 다양한 시선을 가진 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여린 날 보듬었고, 편한 안식처가 필요했던 내게 이불, 베개, 매트리스 등 다양한 역할을 고루 해주어 나를 편한 수면으로 이끌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으면 같이 읽으면 좋겠는 누군가도 함께 떠올리게 되는데, MBTI에 따라 F형 친구와 T형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각각의 책이 있다.
#3
사실과 객관에 주목하는 T형에게 추천하는 마음 챙김을 위한 책은 바로 < 필링 굿 > (데이비드 번스 저)이다. 이 책은 우울이 오는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하며, 상황의 발생부터 해결까지 계단식 해결 알고리즘을 제시한다. 묘사되는 상황과 제안되는 해결책 모두 굉장히 구체적이다. 책이 얼마나 효과 있는지도 신뢰할 수 있는 통계자료로 논리를 보충하고 수치로 증명한다.
< 필링 굿 >은 우울증 치료와 예방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책 중 하나이며, 인지치료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기분은 인지나 생각에 의해 생겨난다는 주장이 인지치료의 기반이다. 인지치료는 빠르게 증상을 개선하고, 자신의 기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으며, 자기를 다스릴 수 있고, 해결뿐만 아니라 우울에 대한 예방을 할 수 있으며, 인격 성장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지치료에서는 우선적으로 나의 기분을 진단하고 내 기분을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나의 감정은 생각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생각에 대한 오류의 가능성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극단적 흑백논리, 지나친 일반화, 부정적인 면만 정신적으로 여과하는 것, 긍정적인 것 인정하지 않기, 지나친 비약, 침소봉대, 감정적 추론, 해야 한다 식 사고. 낙인찍기, 철저히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개인화 등등. 우울의 원인에 대해, 나아가 인간의 여러 유형에 대해 통달한 느낌이다.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을 만큼 치밀하고 빈틈없이 타당한 이유를 충분히 든다.
케이스별로 자세히 가르쳐준 다음에는 배운 내용을 매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서 맞춰보게 한다. 문제까지 스스로 풀면서 부정적 감정에 대한 모든 원인들을 다시금 복습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에는 어떤 원인인지 레이블링까지 할 수 있다.
표 형식과 넘버링을 십분 활용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으니 무작정 따라 하기에도, 학습하고 흡수하기에도 모두 편하다. 모든 과정을 순서대로,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사람을 우울함으로 이끄는 여느 부정적 뉘앙스도 논리적으로 차단한다. 스마트한 정리의 달인인 저자의 쿨하면서 따스한 느낌이 꽤나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약물을 처방받은 적은 없지만 일종의 약 같은 효과가 내겐 있었다.
#4
F형에게 추천하는 마음 챙김 책은 < 당신이 옳다 >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작가님이 쓰신 책이다. 여기서 '옳다'를 받는 생략된 주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들의 감정은 틀리지 않다.
책에서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존재의 개별성'이다. '나'가 선명히 살아있어야하며, '나'를 구성하는 핵심은 감정이다. 저자는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심리학을 심리적 CPR(심폐소생술)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나'에 초집중하고 '나'가 선명하게 살아나도록 정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심각한 고통을 드러냈을 때 마음과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공감은 거창하지 않은, 좀 더 따스하고 적극적인 시선과 표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라고 한다. 종현의 '한숨' 가사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한숨/그 무거운 숨을/내가 어떻게/헤아릴 수가 있을까요/당신의 한숨/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공감이 그런 의미라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학습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효과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실전에서도 많이 사용했다. 표현법에 따라 같은 감정이라도 다른 뉘앙스가 전달될 수 있다. 공감을 하는 일은 보통 친하고 가까운, 내가 소중히 하는 관계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고, 이 책에서 많이 얻었다.
책에서 얻어간 건 배움 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많이 받은 건 위로였다. 정신과 상담의로서 상담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구체적인 사연과 해결책을 제시해주시는데, 일상 생활에서 대입할 수 있는 사연이 매우 많았다.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지 꽤 되는 지금 시점에서도 떠오르는 사연이 몇 개 있다. 초등학생 아이가 선생님에게 혼나고 집에 와 엄마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듣고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라며 울면서 말하는 장면에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예민한 사람에게 외롭게 산 건 예민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예민한 성격을 잘못된 성격이라 규정당하고 공감받지 못한 채 위축돼서 산 것이라는 저자의 따뜻하고도 예리한 통찰력에 놀라기도 했다. 어릴 적, 또는 지금의 내 모습과 사연 속 인물들이 꽤나 많이 겹쳐보였다.
책 전반에서 따뜻하고도 단단한 저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 당신이 옳다 >라는 제목은 책을 덮고 나면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감정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는 것이 아닌 존중해야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다양한 사연에 일관된 주제를 녹여낸 책이다.
#5
MBTI는 흑백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분야이다. MBTI는 어떤 분야의 성향이 더 높은지에 따라 유형이 분류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양쪽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더 높은 성향을 토대로 우리의 MBTI가 결정된다. T형이라도 F형의 성향을, F형이라도 T형의 성향을 가지고는 있다.
나의 MBTI는 F 유형에 해당된다. 실제로 < 당신이 옳다 >는 내 인생의 단 한 권의 책으로 꼽을 정도로 깊은 울림을 준 책이고, 나의 인생의 지침서로 삼은 책이기도 하다. T형에게 추천하는 < 필링 굿 >이 그에 뒤쳐지지는 않는다. 수없이 읽었던 심리학 책들 중에서 이 책이 줬던 임팩트는 꽤나 컸다. 추천하는 책으로 꼽은 두 권 모두 내가 직접 읽은 책이자 인상 깊었던 책이고, 사실은 모든 유형에게 추천하고 싶다. 두드러지는 강점은 책마다 다르겠지만, 체계적인 원인 분석 및 해결책 제시나 따스한 시선 모두 두 책에 공존한다. MBTI 유형에 따라 더 와닿는 책은 있겠지만, 두 책은 모두 유의미한 여운을 남길 것이고, 색채는 다를 수 있지만 마음을 챙겨줄 공감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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