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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맞이꽃 Nov 14. 2021

강승윤의 인생이 담긴 앨범 [Page]

강승윤의 10여년의 연대기이자 새로운 시작 [Page]


참 오랫동안 기다렸다. 17세의 앳된 소년이 한순간에 '본능적으로'로 대한민국을 들썩였을 때부터 그의 첫 솔로 정규 1집 앨범이 나오기까지 10년 하고도 반년이 더 걸렸다. 


2010년 한창 스타의 모습으로 주목을 받을 때 '로커'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있는 YG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계약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도, 하이킥에서 귀여운 소년의 모습으로 나왔을 때도, 싱글 '비가 온다', 'Wild and Young', '맘도둑'을 연달아 발표 후 미니 앨범을 낸다는 소식이 어느새 잠잠해질 때도, 아이돌과 전혀 어울리지 않던 그가 어느새 팀의 리더가 되어 위너로 데뷔하고, 긴 공백기를 겪고 팀의 최대 위기를 Really Really로 극복한 순간에도, 그리고 위너가 음원 강자로 자리잡기까지도 묵묵히 기다렸다. 그의 솔로 앨범 소식을. 참 모아놓고 이야기하니 매 순간이 영화의 주인공 같다. 영화 서사도 이렇게 짜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모든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수많은 러브콜 중 YG 엔터테인먼트에서의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했고, 혹독했던 서바이벌 끝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서바이벌이었다. 상대방은 형제처럼 지내기도 했던, 완성형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훗날 아이콘이 될 B팀 동생들. 기타를 치며 거친 록 음악을 했던 그는 어느새 군무도 소화하며 어엿한 아이돌 멤버로서의 모양새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계속 열세를 보였던 A팀에게 승리의 깃발이 향한 시점은 그의 자작곡 'Smile Again'을 선보인 후부터였다. 경쟁과 서바이벌에 지쳐있던 연습생 본인들에게 스스로에게 전하는 Smile again의 메시지는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모두 움직였고, 그를 발판으로 A팀은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Team A-Smile Again. 이후 위너 1집 앨범에도 수록된다.


그렇게 2013년 10월 Win 프로그램에서 이긴 Winner A팀은 Winner가 되었고, 즉시 데뷔라는 사전 공지와 달리 그 후로부터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지만 공들인 프로모션과 함께 '공허해'로 2014년 8월 화려하게 데뷔했다. 공허해뿐만 아니라 더블 타이틀 컬러링, 수록곡 끼부리지마까지 큰 사랑을 받으며 무적의 괴물 신인으로 가요계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데뷔곡 공허해 뮤직비디오


그 이후가 문제였다. 기약 없는 공백기가 계속되었고, 방송 출연과 자체 콘텐츠도 부족한 회사 특성상 활동하지 않는 멤버들의 근황을 알기도 어려웠다. 신인에게 그 정도의 공백기가 주어진 건 유례없는 상황이었다. '센치해'로 컴백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워낙에 큰 히트를 쳤던 전작 '공허해'에는 못 미치는 수치상의 성적으로 강승윤은 위너의 리더로서 부담감이 꽤나 컸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태현의 그룹 탈퇴로 불안한 예감이 확실한 사실이 됐던 순간, 위너의 활동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새 멤버 영입, 심지어 팀 해체까지 극단적인 선택들이 고려되던 시점에서 공백기 동안 위너 멤버들은 예능에 출연하거나, 개인 연습을 하는 등 묵묵히 자신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길을 닦아 나갔다.


팀의 존폐가 논의될 정도의 최대 위기를 극복한 데에 큰 기여를 한 이는 다름 아닌 강승윤이었다. 위너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K-Pop에서 트로피컬 장르의 유행을 선두했던 세련된 'Really Really'는 그의 손에서 4시간 만에 탄생한 곡으로 위너는 그 해 최고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Love Me Love Me', 'Everyday', 'Millions', 'Ah Yeah' 등의 센스 있는 곡들로 꾸준히 활동하며 대중성과 팬심을 다 잡는 사랑받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위너는 어느덧 8년 차를 맞았고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었으며, 최근에 재계약 소식을 알리며 앞으로도 그들의 음악 세계를 펼쳐 나갈 것을 예고했다. 항상 묵묵히 위너를 누구보다 아끼고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던 강승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로 보답이 되었다.


Really Really 뮤직비디오

다른 아이돌 그룹과 비교하면 컴백 주기가 그리 빈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1년 2 컴백으로 'Really Really' 이후로 리더이자 메인보컬로서 행복하게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든 곡을 노래하는 아티스트는 노래 속 화자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잘 표현할 수 있고, 청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줄 수 있고, 그런 여운을 감사히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내가 반했던 모습은 10년 전 기타를 들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넘치는 매력과 잠재력을 뽐냈던 패기 넘치던 17세 소년의 모습이었기에. 본인만의 개성이 참 강했는데 항상 자신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어필할 생각보다는 팀이 우선이었다. 팀으로서 자리를 잡고 싶고, 위너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과 부담감이 언제나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것처럼 보여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팀으로서 멤버들끼리의 조화로운 매력과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것도 좋았지만, 그토록 매력적인 그의 보이스가 온전히 담긴 솔로 앨범에 대한 갈증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멤버 김진우와 이승훈이 입대를 하면서 위너는 군백기를 맞고, 개인 활동 소식이 점차 들리기 시작한다. 멤버들의 군 입대를 앞두고 발표한 위너 3집 앨범 [Remember]를 발매 홍보를 위해 출연한 복면가왕에서 장기적으로 집권하며 화제성을 낳는 효자 가왕으로 등극한다.  

복면가왕 최애곡 멀어지다


이때 강승윤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타이밍이었을 텐데, 아쉽게도 오랫동안 봐 왔던 YG엔터테인먼트는 좋은 시기를 잡는 센스가 전무했다. 이 좋은 타이밍을 날려버리고서 강승윤은 배우로서의 작품을 하나 더 찍게 되고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올해 1월, 솔로 앨범 소식이 떴다. 새해를 맞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너무 좋은 깜짝 소식을 기대 없이 접하게 되어 감동은 배가 되었다. 공식 날짜가 뜨기 전까지 믿지 않는 YG의 소식이었기에 기대하면서도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3월 29일로 공식 앨범 발매일이 정해지자마자 그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덕질을 할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Page 앨범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본연의 음색과 가창력은 물론이고, 그의 솔직한 음악 이야기까지 담겼다.


그의 앨범 [Page]는 스스로 자신의 첫 페이지라고 소개하기도 했지만, 앨범 자체가 하나의 책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앨범이 탄탄하게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어서 트랙 순서대로 들으면 트랙이 넘어갈 때마다 책 페이지가 한 장씩 넘겨지는 느낌이 든다.


1번 트랙 '아이야'에서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가장 크고 궁극적인 고민을 던진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낀 책임감과 부담감을 직설적으로 털어놓는데, 2번 트랙 '그냥 사랑 노래'에서 가끔 가벼움도 필요하다면서 그냥 사랑노래나 듣자는 게 묘하게 이어지는 대화로 느껴진다. 3번 트랙 '멍'에서는 바로 전 트랙인 2번 트랙처럼 밝게 지내와서 지나쳤던 마음의 멍에 집중하고, 4번 트랙 'Skip'에서는 걱정 많은 자신에게 괜한 걱정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이야 뮤직비디오

 

그렇게 첫 번째부터 네 번째 트랙까지 화자도 청자도 모두 '자기 자신'이다. 5번 트랙 '안 봐도'를 기점으로 청자가 타인으로 바뀌고,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인생에서 인간관계는 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 아프지만 안 봐도 뻔해서 끝낼 것이라는 5번 트랙 '안 봐도', 나 없는 네가 행복해 보인다는 송민호와 함께한 6번 트랙 'Better', 산뜻한 비트 위에서 가장 소중한 팬들도 상기하는 7번 트랙 'Captain'까지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8번 트랙 '뜨거웠던가요'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내가 쏟았던 사랑(열정)이 뜨거웠던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데, 이어지는 9번 트랙은 바로 죽도록 네가 밉기도 하고 아직 네가 그립기도 하다는 내 눈물 버튼 '365'이다. 물론 '뜨거웠던가요'에서의 감정도 실제로 느꼈던 것이지만, 이어지는 9번 트랙의 내용으로 보아 그래도 결국 그리움도 남아있었다고 해석된다. 그런 경험의 아픔이 10번 트랙 '싹'에서 미련 남기지 말고 싹 떠나라, 11번 트랙 '비야'에서 맑아져라라는 마음 아픈 메시지로 전달된다.

365 밴드 라이브 버전


타이틀과 동명인 마지막 12번 트랙 '아이야'가 수록되면서 앨범이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고, 이는 앨범의 완성도 측면에서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인생 선배 윤종신 선생님께서 잠시 미뤄두었던 1번 트랙에서의 삶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해 주시고, 마지막에 ‘잘 컸다’라는 멘트로 앨범이 완전히 마무리되면서 하나의 인생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한 권의 책도 끝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는 순간, 이 앨범을 다 읽고 덮은 순간 많은 여운을 느꼈다. 곡을 개별로 봐도 좋은데, 앨범의 유기성 면에서 봤을 때도 정말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아이야(feat. 윤종신) Special Live Clip

  

강승윤은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의 자신감 있으면서 겸손한 모습, 패기와 열정이 가득 담긴 모습은 내 삶에도 늘 영감을 주었다. 단단하면서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그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앨범 [Page]는 언제나 그랬듯 힘든 순간에는 위로를, 나태해질 때쯤이면 좋은 자극을 주었다.


보이스 컬러의 매력도 다양한 장르의 소화력도 가지고 있는 그는 되려 고민이 많았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풀어나갈지,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앨범 발매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성적 면에서는 완벽한 잭팟을 터뜨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솔로 활동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보인 [Page]는 이미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이 증명된 강승윤의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 또한 보란 듯이 보여 주고, 앞으로의 그의 음악 인생의 또 다른 확실한 이정표가 되었다.


나의 인생이 너무 힘들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쏟는 일조차 버거울 정도로 여유가 없었을 때도 은연중에 강승윤, 그리고 위너를 위한 마음속 공간은 비워 놓았던 것 같다. 위너가 학교 축제에 왔을 때 8시간을 기다려 펜스를 잡고 맨 앞 줄에서 무대를 즐겼던 순간도, 솔로 소식이 나왔던 순간부터 솔로 활동이 끝났던 순간까지 매 스케줄을 챙겨 보고 감상했던 열정도 모두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한결같이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매 순간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강승윤의 진심을 믿고 응원한다. 그가 대중에게 모습을 비춘 지 11년이 지나 어느덧 그는 28세가 되었고, 멀지 않은 훗날 군백기도 찾아올 것이다. 그 시간을 지나 오래오래 노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11년도 버텼는데 뭔들 못 버틸까. 모두 존중하며 버티고, 그의 음악 인생 제2막을 두 팔 벌려 맞이할 준비가 벌써 되어있다. 아, 여담으로는, 몇십 곡이 하드에 보관되어있다는데, 군백기 이전에 2집을 보고 싶다는 이루어질 기대는 안 하는 욕심 또한 있다. 그 목소리로 내는 음악은 뭔들 좋지 않을 수 있으며, 작사 작곡 실력을 겸비한 데다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완벽주의인 그의 작품에 어찌 흠이 있으랴. 그의 작품을 오래, 많이, 그리고 가능하면 자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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