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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19. 2022

1달의 신입 교육, 수습 마케터가 느끼는 것들

 정신없이 바쁜 신입행원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직 수습행원으로서 마케팅 OJT 교육을 들으며 느끼는 신입으로서의 감정들을 이곳에 적어보고 싶다.



(1) 남들 앞에서 PT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입행 후 느낀 점은 '입행 전 겪었던 면접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입행 후에는 남들 앞에서 PT하는 일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들 앞에서 내 의견을 명료하게 전달하고 어필해야 하는 경우가 늘다.


 입행 후 개인, 팀 단위로 신상품을 기획하고 임원진분들 앞에서 발표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동기들끼리는 이걸 우스갯소리로 비공식 3차 면접, 4차 면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비공식 5차 면접이 예정되어 있다.



(2) 팀 과제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점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였다. 팀 단위로 논의하고 상품을 기획하는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더 나은 신상품을 구상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정신을 조금만 놓아도 집단적 독백으로 연결되거나 논지에 맞지 않는 대화가 지속될 때가 잦았다. 이러한 현상을 특히 이번 팀 과제를 하면서 많이 경험했는데, 이때마다 본인을 포함한 팀원 모두가 힘들어했다. 따라서 회의 시작 전에 명확한 회의 목표와 주제를 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함을 깨달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쉽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것은 실현하기 힘든 엄청난 일이기도 하다. 팀의 목표가 바다 항해였을 때 뱃머리가 산을 향했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팀의 목표가 뻔한 바다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탐구였다면 배가 산으로 향하는 것은 엄청난 성과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배가 산으로 가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팀이기에, 경영은 생산성과 효율 저하에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 회의를 생산적으로 이끄는 일은 아직 어렵지만, 너무 좋은 팀을 만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일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3) 좋았던 점 - 성과를 인정받았을 때의 성취감, 보람


 내 개인 과제물은 '게임 요소를 도입한 새로운 금융상품 기획'이었는데, 팀 과제 수행 당시 우리 팀은 나의 개인 과제물을 디벨롭하고 구체적인 IMC 전략을 수립해 발표하기로 했다. 당시 해당 발표를 본부장님을 포함해 총 8명의 임원진분들께서 듣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 10분 + Q&A 10분)


 다들 우리의 신개념 금융상품에 굉장히 흥미롭다, 재미있다,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중에서도 M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부서의 부장님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들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질의응답을 이어나갈 때 부장님 혼자서만 심각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러더니 '이런 타깃을 추가해보는 것은 어떠냐', '해당 상품을 개발한다면 어떤 개발 툴을 사용할 것인지 혹은 어디와 협업할 것인지 고민한 내용이 있냐'고 여쭤보셨다. 이를 들은 주변 부장님들께서 '이 친구들은 아직 입행한 지 2주밖에 안 된 신입들이라 그런 수준의 질문은 어려울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더니 질문을 던진 부장님께서 머쓱하게 웃으시며 '예전부터 계속 기획을 고민하던 부분이라 해당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들었다. 실제로 실현할 의사가 있어서 진지해졌다'고 하셨다.


 부장님 말씀대로 우리는 아직 회사에 정식으로 발을 내딛은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 귀 담아 들어주시고 실현까지 고민하시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대학교 합격 통지를 확인한 이래로 이만큼 가슴 떨리고 설렜던 순간은 없었다.


 '이런 보람을 느끼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구나. 개발 툴을 물으셨는데 개발 단계도 기획하고 개발팀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앞으로 모바일 개발 분야 공부가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또다시 워커홀릭이 된 순간이었다.




(4) 걱정되는 점 - 권한/규제 이슈, 철저한 보안과 통제


 1) 철저한 보안과 통제


 앞으로 걱정되는 점도 있다. 나는 원래 금융권에 관심이 없었는데 은행에 입행하게 된 케이스이다. 따라서 금융권이렇게까지 심각한 보안과 통제가 적용되는 줄 몰랐다. 우선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굉장히 제한적이고, 웬만한 인터넷 사이트 전부 접속이 차단된다. 또, 함부로 파일을 반입, 반출할 수 없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메일, 드라이브, 노션을 비롯한 모든 파일 업로드 가능 사이트들이 차단된다. 내 성향부터가 자유 지향적인 데다, 마케팅 인사이트는 자유롭고 크리에이티브한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기에 폐쇄적인 환경이 너무나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입행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어느 정도는 적응을 한 것도 같지만, 답답하고 갇혀있는 느낌을 받는 것이 아직은 힘들다.


 2) 권한/규제 이슈


 금융권이라 힘든 점은 또 있다. 금융권은 돈을 다루는 업이다 보니 규제가 굉장히 심하다. '우리도 캐릭터를 활용한 콘텐츠 사업을 해보자', '팝업스토어로 프로모션을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부 금융 규제 이슈로 시행할 수 없었다.(정확히는 팝업스토어의 경우, 체험형 성격의 팝업스토어까지는 가능하다.) 또, 우리가 아무리 멋지고 획기적인 광고 안을 기획해도 심의필을 통과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전부 규제에 걸리니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어 힘들었다.


 또, KB금융지주 내에서 은행이 가지는 권한과 입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했다. 잘못하면 계열사 내에서 은행이 특혜를 받는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우리가 어떤 프로모션 방안을 기획했다 하더라도 지주의 승인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한 안들도 있었다.


 마케터가 되면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내게 이런 근무 환경은 전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을 갔을 텐데'하는 의미 없는 후회까지 해보았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기회로


 팀 과제 발표가 끝나고 팀끼리 격려 차원에서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번 팀 과제를 준비하면서 권한, 규제 이슈로 창작의 제한이 걸려 심적으로 힘들었음을 밝혔다. 동기들도 모두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중 한 명이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런 일들을 개선할 수 있으며, 고민해야 할 범위가 더 늘어나는 게 배울 점이 많아 즐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불만의 목소리를 내도 위에서 들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 햇병아리인 우리가 과연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내 반응에 동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목소리를 내야지.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거야.' 그 말에 마음이 동했다. 해당 상황에 힘들어하고 벌써부터 진로걱정하는 나와, 해당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순간을 엿보기. 상반된 마인드의 차이가 극심하게 느껴지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잠깐 다시 팀 과제를 수행하던 때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팀 과제 기획안에서 '스타프렌즈'라는 캐릭터를 사용했는데, IT를 주축으로 하는 카카오뱅크와 다르게 우리는 본래 업종이 금융업에서부터 시작하기에 캐릭터를 통해 수익을 추구할 수 없다. 제한된 프로모션과 캐릭터 활용 방안. 하지만 우리 팀은 역으로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타 캐릭터 굿즈들은 돈을 주고 쉽게 살 수 있지만 우리 캐릭터의 굿즈는 고객이 되어 참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희소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희소성은 고객 해당 캐릭터만의 매력을 느낄만한 충분한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규제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인식해보자는 것이 우리 팀의 생각이었고, 결국 해당 인사이트는 임원분들께도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 팀 과제하면서도 생각했는데. 위기를 기회로.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앞으로도 행원으로서 직장 생활을 영위하면서 수많은 버거움과 회의감, 내 꿈과의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항상 생각해야겠다. 위기를 기회로.


 내가 신입 때 기획한 신상품안이 그랬고, 내 동기가 그랬듯. 나도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하며 제3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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