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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한울 Oct 11. 2024

어쩌면 아직 소속감이 필요했던 걸까

01. 인연은 갑자기 찾아오는 법

 나는 아침에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하고, 4시 30분에 퇴근을 한다. 9 to 6 패턴과는 조금 다른 시간대에 근무를 하고 있다. 이전보다 월급은 적지만 매우 만족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여름에는 해가 중천에 있을 때 퇴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겨울에는 길이 얼기 전에 퇴근할 수 있으며, 전반적으로 퇴근길에 차량이 한적한 편이다. 조퇴와 외출 등 복무를 상신하지 않고 병원을 갈 수 있고 기타 가정사도 돌볼 수 있다.

 

 사실 이직 초반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성과 없음. 승진 없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같았다. 사내에서 동료들과 친분을 쌓고 싶지도 않았다. 일터는 돈 버는 수단일 뿐, 나에게 더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일이 차츰 적응되고 속도가 꽤 붙었을 때 동료에서 친구가 된 여럿이 생겼다. 사담이 오가고 잦은 모임 요청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이런 소속감이 필요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퇴근길에 모여 카페에서 수다 떨고 필라테스 학원 그룹반에 등록해 뻣뻣했던 몸을 달래 보기도 하고 소소하게 생일파티를 해주기도 하면서,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관계들이 건강한 애착형 관계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의 비율이 높아졌다. 퇴근 후 회식 1차만 참여하던 나였는데 점점 사무실 자체와도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근무시간도, 근무 외 시간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와 직렬이 다른 집단이긴 하지만 또래들이 생겨 함께 나누고 싶은 말들과 하고 싶은 취미들도 생겼다. 점심시간의 커피 타임, 쉬는 시간의 탕비실 접선 그리고 복도에서 만났을 때 눈웃음으로 주고받는 눈인사. 출근이 즐거워졌다. 즐거움을 찾는 데에는 일이 익숙해졌을 시기보다 관계가 편안함에 이르렀을 때 효과적이었다.


 매 년 구성원이 조금씩은 바뀌는데 이직 초기 1년간은 동료가 바뀌어도 업무 진행에 차질이 없으면 어떠한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와야지. 딱 여기가 마지노선.

 친구들이 생기고 나니, 인사 시기가 오면 재밌는 오늘의 지금. 이 감정을 내년에는 못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앞섰다. 이임인사식도 더더욱 신경 써서 준비하고 우리만의 이별파티도 몇 번이나 진행하곤 했다. 영원한 안녕은 아니지만 매일 만나던 사이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야 하는 사이가 되는 것 마저 아쉬웠던 모양이다.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기 다른 기관에서도 일정을 맞춰 만나며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시간이 꽤 흘러 각자의 상황이 달라졌다. 누군가는 결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응원하고 행복을 기원하며 지내고 있다. 같이 성장해 나가는 서로의 모습에 감격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지만 때론 아직 가볍게 놀리고 웃고 떠드는 관계가 더 익숙하고 편안하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리숙한 직장생활과 서먹한 인간관계를 풀어나갔던 그때에 머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몇 달에 걸쳐 시간 약속을 잡아 오랜만에 모였다. 누구는 출산준비, 누구는 소개팅. 각 자의 사유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린 시절의 친구가 아니어도,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정이 시작된 시점과 유지된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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