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아.. 버려졌구나.'
버리게 될 것의 대상이 정해 진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형태를 생각하게 된다. 지류 라면 구깃구깃, 혹은 파쇄기 정도를 써야 할 크기만큼 이나 작은 조각으로 버려 야 한다. 재활용으로 들어가야 할 것 들이라면 조금은 깨끗하게 버리고 싶다.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도 여러 가지이구나.' 오전 11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영화 대사에서 갑자기 나의 오늘의 모습이 투영된다. '그랬네. 내가 널 그만 만나야 한다고. 너에게 맘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맘 속에 울렁 거림이 였것만, 8월의 끈적한 공기로 불쾌감이 한 참 치솟던 시간에 불현듯 솟아 나는 한 가지 생각.. 나는 버려 졌어 던 거였네.' 가빈아. 너 버려진 거야.
물건의 쓰임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때, 혹은 세월로 인해 생겨난 상처 들로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대상과 헤어질 준비와 결심을 하곤 한다. 하나를 더 꼽자면 말갛고 뽀얗게 보이던 그것 만의 무드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흔히 이걸 '싫증'이란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결심이란 건 사람 이 되었건 사물이 되었건 그리 간단한 절차는 아니다. 단지 대상이 물건 일 경우에는 조금 결정의 시간이 덜 걸린다 는 것뿐이다.
연일 더위에 지쳐가니 그저 물 생각 만이 간절한 아침. 냉장고를 열였을 때 '버려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the illusion of fluency (유창성착각)을 일으킬 요리를 자신하며 며칠 전 사 뒀던 육류류 와 갖가지 야채들이 얌전히 놓여있었고, 그 아래 구석을 차지하고 앉은 푸른곰팡이가 스멀스멀 날 것 만 같은 정체 모를 것 들. 장갑을 껴고 힘차게 냉장고 앞으로 다가간다.
첫째 칸 을 보자 하니 몇 번 열었다 닫아 둔 흔적이 있는 장류 들과 소스들이 보인다. 제조날짜도 확인해 본다.
두 번째 칸 에는 최근에 사 넣어둔 반찬 몇 가지가 보인다. 깔끔하네. 이 정도면 좋은데.. 그러나 나의 저 뒤쪽 시야 너머에 '날 좀 봐줘' 라며 눈길을 사로잡던 오래되어 보이는 무언가의 정체, 겉절이였네..
겉절이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면
의미 (명) 상추, 무 따위를 절여서 곧바로 무쳐 먹는 반찬의 한 가지
의미 (동) 김치를 담글 때 배추 따위의 숨을 죽이려고 소금을 뿌려 애벌로 절이다.
갑자기 나를 감싸오는 이 바이브는 무엇인지.. 내가 뽑은 엄마의 최고의 음식은 바로 겉절이 다. 보기에는 너무나 간단한 레시피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거지만, 수많은 겉절이를 먹어 보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엄마의 겉절이는 그 누구의 세프도 따라올 수 없다. 물론 나 만의 관점이지만, 손으로 배추 가닥을 쓱쓱 뜯어내고 나서 몇 가지 양념을 넣은 거에 불과하지만, 깊숙한 그녀만의 성숙하고 고급스러운 자태처럼 근사한 만찬의 주된 요리를 차지할 만큼 손색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깊은 맛이 나는 겉절이를 두고 반드시 김치를 상에 올리기를 말씀하시곤 하였다.
냉동실. 와. 이건 도대체 언제 사 두었지는 모르고 고이고이 모셔둔 값나가는 생선들. 먹지도 않고 이제는 요리란 복잡하고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임을 깨닫고 나니 결정은 쉬었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정리하고 나니 공간이 좀 보인다.
버려야 할 음식물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뿌듯하고 개운 한 기분을 느껴본다. 아침 물 한잔의 생각이 이토록 커다란 일까지 이어지니 어쩌면 하루 일과는 풍성하지 않을까 하며 출근 준비를 서둘러 본다.
이제는 부모의 부재가 조금은 익숙해져 간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을 떠나 보내고 난 후 몇 해 동안 전 우주에 고아가 되어 버린 자신이 되었단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곤 했다. 아직도 나는 진행 중이다.
사람. 사랑. 관계. 나의 부모. 부모의 부모.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렇게 끝 이 보이지 않은 계보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관계 란 우주의 먼지 의 양 만큼이나 복잡하고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인간이란 생명체는 '말'과 '행동'이란 좋은 표현의 매개체를 통하여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만 헤어지게도 될 수 있다. 한 번이라도 헤어져 보지 않은 사람은 있겠지만, 한 번 만 헤어져 본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된다. 나는 오늘 무엇과 헤어지고 있었는지. 나의 그 사람은 왜 날 버렸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겠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서로의 이해와 인정의 절차를 무시 하는 것뿐이라고. 오전 11시에 나에게 스쳐가던 나의 생각이 그저 나의 연민이란 색이 덧칠 해진 낡은 상록수 이길 바라본다.
내가 버려야 만 했던 것들과 그들. 나를 버려야 만 했던 그들. 그렇다면 나에게 버림받았던 그들 도 지금의 나 만큼이나 간절히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까?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다시는 돌아 서지 말 자고 그래도 소식은 전해 보자고..
아이들의 재잘 거림과 말소리에 절여진 겉절이 가 된 나는 서둘러 다시 냉장고를 열어본다. 이 공간 에는 또다시 어떠한 것들로 가득 채워질 것 일까? 돌아서서 나의 방으로 향해 본다. 그의 모습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나는 오늘을 마무리해 본다.
가빈의 8월은 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