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2회 시험기관차

by 여니

'여보세요? 아. 정말??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어? 반가워... 얼마 만이야~~.'

가빈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누군가 알아볼 새라 급히 몸을 돌려 물음에 답한다.

'응. 잘 지냈지? 다행이네. 아니면 어쩌나 했지 뭐야.'

인생이란 여정에 정해 놓은 규칙 같은 건 없지만, 가빈 또한 여느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그 즘이었다. 한 번 보자는 이야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그러 하자며 황급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가빈의 튀어나올 듯 한 심장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혼자만의 공간으로 다시 숨어 버린다. 어서 이 시간이 흘러 그저 지나가버린 어제가 되길 바란 채로 가빈은 과거의 파도를 타고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동그라미세모네모'의 존재 이유란 선택의 다양성을 부여한다. 당신의 선호는 어느 쪽 인 것 인지? 가빈에게 좋아하는 숫자와 알파벳을 물을 때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숫자 7, 알파벳 J' 이였다. 아리스토틀(Aristotle)은 숫자'5'를 가리켜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 글을 본 적 있다. 반증하는 이론을 내세우지만, 사실 동의 할 수 있는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 지문을 보고 많은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사실 가빈도 같았다. 사람마다 어떤 이유를 딱히 피력할 수 없는 게 , 바로 선호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그냥(Just)' '그저(that's)' 란 아주 괜찮은 단어가 이런 경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랑, 음식, 색깔, 등에게서 흔히 보이는 반응이라 할 수도 있겠다. 가빈에 그렇다 할 만한 이유를 굳이 뽑자면 학창 시절에 부여받은 출석 번호가 겹치게 된 것이라고 할까? 그렇듯 가빈에게도 '그냥 ' 그저' 그 사람이 좋았다. 외모, 학벌, 집안 등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잣대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자면 말도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가빈에게도 탄탄한 맥락을 만들 어 내기에는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돈 이 많아 부유한 사람 들, 학업의 1등은 놓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보통의 사람 만이 가지는 평범하고 사소한 무언가를 가지지 못한 것이 있을 거란 편협 한 생각을 가진 가빈이었다. 이런 편협이 있게 되는 이유를 이제는 완벽하게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가빈은 결코 남에게 들이 밀 수 있는 결과물을 가지지 못한 사람 이면서, 어쩌면 보통의 누구도 되기에 어렵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안개에 휩싸였던 때였다.

잘하고 싶지만, 잘할 수 없는 , 잘할 수 있단 다짐은 서지만, 나 서는 발걸음의 시작이 당당 하지 못 하다고 그녀는 늘 자신을 낮추어 보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기가 어째서 혼란스럽고 충돌스러운 것인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 잘하고 싶으니까' 교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그들이 보는 어른 들처럼 말이다. 어른은 쉽지 않은데...





대학 캠퍼스는 예뻤다. 아름드리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채로 몇몇 수다를 나누는 젊은이 들 사이에 그녀도 일부가 되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작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지면 위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은 여린 새싹의 입맛을 돋우기엔 제격이었다. 푸근했으니까.

짙은 눈매와 건장한 체격, 다부진 몸은 벌써부터 다른 이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너 알아? 예비역 이래. 와. 오~~ 되게 멋있게 생겼다.'

점심이 한 창이던 구내식당에서는 자분자분 예비역의 이야기로 꽃이 피어났다.

점심을 마치고 강의 실에 앉아 있던 친구들에게는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예비역, 구내식당의 그 남자가 강의 실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오잉? 아. 영문학과 생이었네. 남학생들도 여학생들에게도 신나는 뉴스를 만난 듯 소란 거리를 만들 고 있었다. 어차피 강의실에서 부딪게 될 수밖에 없었기에 몇 번의 눈 마침이 있었지만, 긴 대화를 이어 가 본 적이 없었다.



발칙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는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어휘이다

-'솔직하고 엉뚱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어디 나에게도 어떤 재능이 있는지 시험해 볼 때가 되었어. 좋아.. 해 볼까 '

가빈에게 발칙한 생각의 근원은 알 수 없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 졌다.

점심의 구내식당. 가빈의 기회

"저기, 있잖아요. 저도 물 마셔야 하는데요..

예비역의 뒤에 기다리고 있던 가빈은 물을 마시고 있던 예비역을 향해 말했다.

" 아. 내가 너무 오래 물을 마셨네. 미안해요.."

"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의례적이지만, 가빈의 시험 기관차는 출발되었다

이후, 강의실에서 그 와의 눈 마주침은 오전의 느끼던 푸근함에 샤워를 막 끝낸 어린아이의 비누 향이 더 해져 뽀송뽀송 향기를 내 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