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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하 Jun 04. 2022

자해 청소년, 자해 예방 리더가 되다

자해의 모든 것


2020년 8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추진 중인 ‘청소년 자해 방지 프로 젝트’에 관한 것이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피어 스페셜리스트들에게 자해에 관한 보수교육용 강의와 국가에서 제작한 자해 상담 매뉴얼에 관한 리뷰를 요청했다.        


우리는 이참에 ‘청소년 자해 예방단 1기’를 선발하기로 했다.  

열정적인 아이들은 “아직도 자해하는 제가 자격이 있을 까요?”라고 물으면서도 “하나 확실한 건 자해는 하면 할수록 더 무너진다는 사실”이라며 누군가의 후회를 막기 위해 참여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병원 진료실과 학교, 가정에서 ‘치료가 필요한 아이’ ‘골칫 덩어리’로 낙인 찍혔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권한을 주었을 때 놀라운 잠재력과 강점을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 중에서도 일명 ‘자해 경험의 전문가’ 일곱 명이 5주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아이들이 매주 보여주었던 성실한 태도와 탁월한 안목은, 그들의 상처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누구 못지않게 다시 한 번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발현된 것 아니었을까.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하는 청소년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진료실, 상담실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자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같은 입장에 섰던 사람으로서 그들을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 열 가지를 정리했다.  



‘치료적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자해를 ‘치료’해주는 게 아니라 자해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는 표현이 더 옳죠.”  

치료에 대한 치료자의 의무감에서 비롯한 생각은 때때로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에 일종의 계급을 부여하는 느낌을 준다. ‘치료적 관계’나 ‘자해 치료’ 등 치료자와 환자를 구분하 는 표현은 내담자의 마음을 닫게 하기 쉽다.  


첫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본인이 치료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청소년을 한 사람으로서 대우하고 친근하게 대하려는 태도다. ‘왜 자해했니?’라는 질문은 이제 그만 여전히 많은 치료자가 자해한 팔을 보고 ‘왜 그랬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내담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치료자가 듣고 싶은 얘기다.  


“왜 자해했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의 힘든 점을 얘기하러 갔는데 순간 딱 끊겨버리는 느낌이에요. ‘왜 그랬어?’라는 짧은 네 글자가 사람 마음을 후벼 파죠.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는 건가? 내가 왜 이유를 말해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와 인정을 못 받는 느낌이 들고 신뢰가 깨져버리는 것 같 아요.” 

“왜(why)가 아니라 어떤(what) 게 힘들게 했는지 묻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냉정을 유지하되 따뜻하게 대해주는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언젠간 줄여갈 수 있다는 믿음 주기  

자해는 만성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어도 고치기 힘들다. 따라서 상담사는 ‘자해를 줄여야 한다’, ‘끊어야 하는 것’, ‘고쳐야 하는 것’이라며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보다는 ‘자해는 서서히 줄여갈 수 있을 거다’ 라고 믿어주는 느낌과 말이 중요하다.  



자해 이유 단정하지 않기 

'자해하는 청소년들은 이렇다 혹은 자해하는 원인은 이것 이다’라고 단정 짓듯이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보통 자해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원인이 있다며 말해주는데, 그것보다는 먼저 질문으로 청소년이 직접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면 좋겠어요.  


자해는 세 가지 외의 이유도 있을 수 있고, 세 가지 모두 복합적으로 섞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반적인 자해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통스럽고 괴로운 감정을 해소해준다.  

둘째, 멍한 느낌에 대응하여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셋째, 스트레스나 고통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자해를 한 달에 몇 번으로 줄이겠다고 횟수나 기간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해를 줄여 나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어요.” (자해 충동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이런 행동을 하겠다, 이런 노력을 얼마나 해 보겠다.)  


“내가 자해하는 이유도 정확히 모르는데 몇 세션 만에 자해 를 몇 번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라는 것은 치료자 중심의 일방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해를 한 달에 몇 번으로 줄일 것이다’라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효과를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다음 달에 목표를 지키지 못했을 때는 더욱 심한 자 책과 자기혐오가 와요. 다짐을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상담사가 이 부분을 세심하게 판단 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경험 하는 자기혐오에 대해서도 다루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자해는 장기전, 삶의 문제 해결부터 

“핵심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해를 줄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해를 멈춘다’는 치료자의 목표보다는 청소년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겠다는 관점에서 상담하면서 삶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함께 노력하기, 그리고 존중하기 

 “효과적인 상담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가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다할 것인지 이야기해준 다면 더 믿음이 생길 것 같아요.”  


“서약서는 ‘성실하게 참여하겠다는 의미’로 하는 것이라 했 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 의미 없어 보이고 오히려 반감이 들기도 해요. 서약서는 강압적으로 느껴지니 좀 더 순화된 표현을 쓰면 좋겠어요.”  


“서약서는 대부분은 미리 만들어져 있지만, 몇 가지 항목은 빈칸으로 남겨둬서 청소년이 상담사에게 원하는 부분도 같이 작성하면 좋겠어요. 제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느 낌이 들 것 같아요.”  



건강하고 올바른 정보 공유  

SNS에 자해 방법을 공유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흉터 관리법이나 상처를 빨리 낫게 하는 방법 등의 정보는 성교육과 같이 더 공식적으로,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한 정보가 양지에서 많이 공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전하고 활발한 정보 공유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SNS에서 ‘흉터, 상처 치료하세요’라는 글을 보면 ‘나를 걱정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힘이 나요. 자해가 아닌 다른 대처법들을 찾을 수 있도록 더 명확하고 세심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해요.”   



가족치료가 성공하려면 

가족치료를 병행할 때는 청소년의 의견을 잘 반영해 당사자가 안전하고 존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 가족치료를 할 때 내담자가 걱정하는 것은 비밀보장이다. 내가 한 말을 가족에게 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저는 가족치료 상담이 끝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께 항상 ‘넌 왜 그렇게 생각하니? 왜 그런 말을 했니?’ 이런 말 을 듣곤 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말을 안 하게 되죠.  


가족치료에 참여한 사람들은 진료실을 나가도 집이란 공간에서 계속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또 가족치료를 진행하면서 진료실 밖에서 서로가 지켜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하는 말 등을 명확히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강점을 기반으로 칭찬과 격려하기 

“첫 회기를 마무리할 때는 ‘용기내줘서 고맙다. 같이 가보자. 나랑 같이 해보자’ 등 칭찬과 격려, 힘이 되는 말을 해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마무리 단계라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같이 따라와 주고 발전해나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면 좋겠고요.”  


“상담 기간 동안 상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같이 노력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며 격려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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