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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하 Jul 15. 2022

팬데믹 2년, 십대들의 정신건강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팬데믹 2년, 십대들의 정신건강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팬데믹 기간 동안 십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와 분리된 학습 환경에서 고립된 상태로 보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시도하며 자율성과 독립성이 발달해야 하는 시기에 우리 청소년들은 좌절과 포기을 감수해야 했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야 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QuaranTeenagers(quarantine + teenager의 합성어. “격리 청소년”)이라 불렀다.



“2년 동안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십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신적 문제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십대가 3년 전 대비 49.8% 증가했다고 보고 했다. 십대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22개국 중 22위로 최하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으며(한국방정환재단 국제아동행복지수조사(2021.12월 발표), 3명 중 1명은 상시적인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 2020)


팬데믹 이전에 이미 트라우마나 정신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십대들의 경우에는 장기간의 고립으로 인해 어떤 이들보다 더욱 큰 영향을 받았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겪었던 고립과 외로움이 십대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이후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문제로 나타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청소년들은 코로나가 주었던 많은 도전과 변화에 비교적 잘 적응해주었으며, 높은 대처능력과 회복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엔데믹 시대를 맞이하며 멘탈헬스코리아는 아프지만 열정적인 청소년들과 함께 코로나가 그들의 정신건강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누고자 한다.



“아이와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의 문제를 너무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소아청소년들의 정신과 방문률이 증가하고 있다. ADHD, 우울증, 불안장애 등 진단명을 받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정신과 약을 잘 복용해 회복이 되고 다시 학교를 잘 다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회복의 출발점이다. 아이를 ‘문제’로 바라보기 이전에 아이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힘듦’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를 위한 진정한 회복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자해’, ‘자퇴 요구’는 뜬금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이 보였는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매일 자퇴하겠다고 해요.”

_고1 학부모 O진아님


※멘탈헬스코리아는 본 칼럼에서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성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자해를 멈출 수가 없어요.” _O서현, 16세



“엄마 앞에서 공부하는게 힘들다고 했더니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거야’라고 말했어요. 방에 들어와 계속 울고 자해를 했어요.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14살 때 처음으로 자해를 시작했던 서현이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도 학교폭력과 가정 불화로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PTSD 증상을 겪었다. 학교가 전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을 때 중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던 서현이는 카메라를 통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집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다. 또한 서현이 밑에 두 명의 동생들 역시 원격 학습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집중할 조용한 장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을 때 저는 기뻤어요. 제가 더 편안하고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집에서 저는 더 많이 혼났고 계속 감시를 당해야 했어요.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애들이 지금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또 찾진 않을까 두려워서 방 안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고립이었어요. 저의 불안과 우울을 잡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완전히 감옥 안에 갇힌 느낌이 들었고,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장 가까운 친구들 마저 낯선 사람이 된 느낌이었어요. 나는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집에 갇혀 혼자 생각만 하면서 불안은 점점 더 심해졌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자해를 했고, 그것만이 유일하게 내 불안을 잠재워줄 수가 있었죠."


지난 2년 간 청소년들의 온라인 정신건강 상담은 78.6% 증가했으며, 주 상담 주제는 답답함과 외로움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정신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응답한 청소년의 비율은 75%에 달했고, 자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청소년도 급증했다. 십대들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안과 스트레스, 실망감과 슬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지만 그에 반해 그들에 느낀 감정에 대한 인정(validation)과 수용(acceptance)은 부족했고,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문제’만 보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관점의 변화가 회복의 시작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감정에 대한 인정, 리더십, 기회와 권한의 부여, 강점 발휘이다. 멘탈헬스코리아에는 수많은 자해 경험의 전문가,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있다. 학교나 가정에서 ‘문제아’, ‘자해 잘하는 애’, ‘정신과 환자’으로 여겨졌던 청소년들이 멘탈헬스코리아에서는 ‘청소년 정신건강 리더’, ‘정신건강 인플루언서’, ‘피어스페셜리스트(전문가)’, ‘당당한 정신건강 소비자’가 된다.


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쿨 현장




“‘나의 아픔이 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문구가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나의 상처를 숨겨야 되는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강연과 인터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안전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렇게 솔직하게 친구들과 어른들에게 털어놓고 인정받은 게 처음이라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어요. 내 상태가 좋아지는 데 큰 계기가 되었고 나를 믿게 되어 내 능력을 확장시키게 되었죠.”



자신의 감정과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대로 인정받고 수용 받는 경험, 그래도 안전하다는 느낌, 회복의 롤모델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제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저는 이제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어요.” _O한나, 19세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학교를 좋아했던 한나는 코로나 기간 동안 학습 동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요즘은 매일 엄마에게 자퇴를 시켜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하지만 한나의 엄마는 자퇴만은 절대 안된다고 한다. 지금도 아침에 겨우 겨우 일어나고 공부는 아예 손을 놓았는데 자퇴하면 어떻게 될 지 안 봐도 뻔하다고 말이다.


"저는 매우 계획적이고 완벽주의자예요. 성공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꿈꾸며 예비고1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기대도 많이 했죠. 그런데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학교도, 학원도, 제가 꿈꿨던 고등학교 활동 계획들도...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했고, 학교에 대해서도 너무 불안해졌어요.


미리 녹화된 수업 영상을 몇 시간씩 혼자 방에서 들어야 했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느낌이었요. 점점 모든 수업에서 뒤쳐지고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매일 침대에서 학교를 갔고, 때때로 방에 영상을 틀어 두고 거실에 나가 혼자서 밥을 먹었죠. 30분 뒤에 돌아오면 영상은 계속 플레이 되고 있어요. 언젠가부터는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이 집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완전히 포기해버렸어요."


학교와 교사가 처음 시도해보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덕에 학교의 수업은 어떤 형태로든 진행되었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하루를 즐겁게 하는 체육, 클럽 활동, 쉬는 시간에 장난치는 것 등 다양한 상호 작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밥은 먹는데, 디저트는 전혀 못 먹는 느낌이었죠.”



수업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십대들은 막대한 손실을 직면했다. 수학여행, 운동회, 축제, 졸업식과 같은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추억과 일생에 한 번뿐인 행사들이 취소되었고, 몇 달 동안 준비해온 공연이나 대회, 해외 일정 역시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이미 잃어버린 것을 우리가 다시 해줄 수는 없지만, 어른들은 낙담한 십대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위로와 연민을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뒤쳐진 학업과 놓쳐버린 기회들에 대해 막연한 걱정과 조급증을 먼저 표출하기 전에 말이다.



아이들은 코로나로 인해 자신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슬프고, 화를 내고, 심하게 좌절할 권리가 있고 이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어른들은 다시 돌아온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 의지가 없거나 나약해서가 아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안전한 느낌을 제공할 수 있다.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유일한 탈출구는 잘 통과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마땅히 위로 받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위로 받고, 이 위기를 잘 통과하기 위해 새롭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함께,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연민(Compassion),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Passion project),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십대들은 이렇게 말한다. 


“뭘 시도하질 못하니 내가 뭘 잘하는 지, 뭘 좋아하는 지 모르겠어요.”

“나도 잘하고 싶은데,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은 없고 부모님 기대만 높아요.”

“일생에 한 번 뿐인 것들을 다 못하고 지나간 것 같아요.”

“학교는 위험한 곳, 예측 불가능한 곳, 불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는 조별과제나 글쓰기/말하기 발표 혹은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여 아이들이 느끼는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해 충분히 나누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느끼며 보다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에 청소년들에게 발언 기회와 권한을 제공하면 중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식별한 문제들에 대하여 청소년의 목소리와 의사결정을 반영한 프로젝트들을 추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멘탈헬스코리아에서는 청소년과 학교가 코로나에서 잘 회복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청소년 정신건강 자문 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양한 열정 프로젝트(passion project)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대면 학습 변화에 따른 청소년들의 이슈사항과 요구,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청소년에게 우선순위가 되는 필요와 불평등한 것들을 선정하여 교육청과 학교에 알리고 변화를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조명연 과장(가운데)과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학급 단위에서는 아이들의 상호 지지와 동기부여를 위해 단기적으로 성취 가능한 작은 목표에 대해 미션 챌린지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건강과 셀프케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재밌는 이벤트, 캠페인 활동을 기획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십대들이 정신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왔지만, 아이들은 마음 속으로 외친다. ‘저도 다시 잘해보고 싶어요. 잘 살아보고 싶어요. 그러니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이 가진 막연한 불안과 걱정에 대한 투사가 아닌 희망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이다. 아이들의 변화에 필요한 것은 잔소리가 아닌 롤모델(영향력을 주는 존재)이며,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고 수용 받는 안전한 환경과 문화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장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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