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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토리 Mar 17. 2021

네이버가 '실검'을 폐지한 이유

기업에게 이유가 없는 결정은 없다

네이버가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실검)’를 폐지했습니다.

2005년 서비스 도입 이후, 오랜 기간 우리의 생각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실검.

2월 25일 0시 폐지된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

네이버는 폐지의 이유를 ‘검색어의 다양화’로 꼽았습니다.

실제로 모바일이 국내에 상륙했던 10여 년 전에 비해 네이버 검색어 종류의 수는 무려 33.6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모바일 검색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검색의 양과 패턴이 나타나게 되고, 실검 서비스로는 그 흐름을 명확하게 반영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순위 개수를 10개에서 20개로 늘리고, 개인 관심사 맞춤형 차트를 도입하는 소소한 변화를 거듭했지만 결국 네이버는 폐지만이 근본적인 해답이라고 결론을 내린듯합니다.


네이버의 결단이 꼭 놀라운 것만은 아닙니다.

국내 검색 서비스의 양대산맥 카카오는 네이버보다 한 발 앞서 작년 2월 ‘실시간 이슈 검색어’를 과감하게 폐지했습니다.

당시 실검 서비스에 대한 카카오 측의 언급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실시간 이슈 검색어는 이용자들의 자연스러운 관심과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실시간 이슈 검색어는 결과의 반영이 아닌 현상의 시작점이 돼버렸다"

2020년 2월 20일 종료된 카카오 실시간 이슈 검색어 서비스

이 얘기는 모두 실검이 조작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실검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기업들은 이것을 광고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키워드 검색을 유도함으로써 소비자를 유인하는 것은 물론, 아예 돈을 받고 실검 순위를 조작해주는 업체도 생겨났죠.

2015년에는 8,000여 회 실검 순위를 조작한 일당이 유죄가 선고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급상승 검색어의 파급력을 활용한 '실검 마케팅'

이러한 상황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선택은 용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로지 올바른 사용자 경험을 위해 자신들이 소유한 강력한 서비스를 포기했으니깐 말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IT기업들이 과연 아무런 대책 없이 실검과 같은 강력한 서비스를 포기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에게 의도가 없는 결정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네이버에게 이번 결정의 의도는 '커머스'였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지난해, 네이버는 영업이익 1조 2,153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커머스(쇼핑), 핀테크의 압도적인 성장이 있었죠.

이에 비해 전통적인 서치 플랫폼(쇼핑 제외 검색 광고)으로서의 매출 성장은 더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물류, 페이 등 커머스와 핀테크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죠.


이제 네이버는 단순한 검색 플랫폼이라기보다는 강력한 검색 기능을 기반으로 한 커머스, 쇼핑 플랫폼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네이버에게 실검은 대수롭지 않은 영역입니다.

무작위로 나열되는 순위는 주력 산업인 커머스, 핀테크와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없는 데다가, 실검을 조작해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마케팅 업체가 있다면 쇼핑 광고로 큰 수익을 올리는 네이버에게는 오히려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네이버 데이터랩 서비스 홈

실검을 대체하는 서비스인 ‘데이터랩’을 살펴보면 네이버의 의도는 더욱 명확해집니다.

데이터랩은 기간별, 분야별, 성별, 지역별, 연령대별 등을 기준으로 검색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이 서비스의 중심은 단순한 검색어라기보다는 쇼핑 키워드입니다.

실제로 데이터랩 페이지의 홈에는 트위드 재킷, 원피스, 트렌치코트와 같은 키워드가 쇼핑 인사이트라는 메뉴로 노출되어 있죠.

그리고 네이버는 별도의 페이지에 접속해야만 볼 수 있는 현 데이터랩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네이버 홈에서 데이터랩으로 인기/트렌드 품목을 추천하고 이것을 스마트스토어와 연결하는 서비스가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 가능케 하는 부분입니다.

네이버

여러 부작용을 낳았던 실검 서비스의 폐지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다만, 이 결정이 단순히 ’쇼핑 플랫폼 네이버‘로의 스텝일 뿐이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소비와 쇼핑만을 외치는 기업이 되기에는 네이버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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