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귀 기울이기

육아 감사일기_육아감사일기_임신기간

by 주윤

3차 병원에서 응급수술로 출산한 나는 산부인과 병동에 4박 5일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나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단정한 직사각형의 침대 위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껏 침대에서 억지로 일어날 때마다 제발 내 등이 침대에 더 붙어있었으면 좋겠다며 소원했던 나는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지금의 무력함이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다리와 세워지지 않는 허리는 참 낯설었다.



익숙한 것들이 어색해진 것만큼 전혀 새로운 몸들도 나를 찾아왔다. 아이가 9달 동안 노니던 자궁은 제 역할을 끝내고 문을 닫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나에게 상의도, 노크도 없이 몸에서는 자궁에서 나온 노폐물과 피가 일방적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자연의 프로그래밍 앞에서 이렇게 나는 무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큰 기저귀 패드를 차고 있는 수밖에. 심지어 나는 내가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는데, 늦은 밤에 추이를 살피러 오신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패드를 교체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데, 이걸 어쩌나. 맙소사.



'네? 교체요? 아, 어쩌죠. 저는 못 움직이는데. 어쩌죠,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얼굴을 본 지 하루도 되지 않은 나의 패드를 교체해 주셨다. 누군가의 뒤처리를 해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나의 뒷 처리를 맡겨본 적도 없어서 혼자만 잘난 줄 알고 살았던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눈을 꽉 감았다. 늦은 밤, 병실의 불이 꺼진 밤을 빌어 내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었다. 간호사선생님의 직업적 자아는 간결하고 능숙하게 패드를 교체해 주며, 마지막 말을 남기셨다.

"이건 가족들이 대게 해주셔야 하는 일이에요. 오늘만 해드린 거예요."



네, 선생님. 당연하지요. 그럼요 그럼요. 가족이 하기에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가족에게도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 맞아요.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말했다. 내일 반드시 내 두 발로 일어나야 하는 절대 이유가 생겼다. 밤의 병실이어서인지, 눈을 감아서인지 지금 나는 그 고마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선생님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무지했던 사람이 가진 직업적 소명의 손길에 나는 연대감과 세상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그녀 덕분에.



그렇게 한 숨 돌린 다음 날, 이건 또 뭐지? 가슴이 딱딱하게 굳으며 찌릿함과 묵직한 통증이 동시에 나타났다.아무 예고없이. 아니 예고가 있었다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예고된 신체변화에 무지했으므로.


젖몸살이라고 했다. 아이를 출산하면 엄마의 몸엔 모유가 돌게 되고 아이는 그 신성한 초유를 먹게된다. 하지만 나는요! 주수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내 아이는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있다. 하루에 딱 30분. 밤 8시부터 8시 30분까지만 잠깐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초유!? 모유 수유는 커녕 낳은지 이틀째 되는 날까지 얼굴도 못봤는데요! 닭 목을 비틀어도 동은 트고, 내가 제아무리 추위를 많이 타고 찬바람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소연해도 겨울은 온다. 자연은 그렇게 상황을 압도한다. 내 아무리 내가 낳은 아이를 못 보고, 못 걸어다녀도 산모 몸엔 모유가 도는 것이 자연의 셋팅임을 어찌한단 말인가. 아무 준비 없이 출산 이틀을 맞이한 내게 남은 건 확실하고 선명한 몸의 통증 뿐.



답답했다. 임신기간 동안 아무도 나에게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그리고 결국 내 몸에서 이루어지는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변화와 일들을 알려주지 않았다. 임신 기간은 감사, 태교,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라는 몇 겹의 포장지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진 시간이었다. 내 몸은 우주 최대의 풍선이 불어지고 있다. 나는 매일 낯선 내 몸을 만나고 있다. 오늘 내 배는 어제의 배보다 다른데 이게 맞나 싶고, 내 어깨는 이게 살이 찐 건지 부은 건지 도통 모르겠었다. 손가락에도 살이 이만큼 찔 수 있는 건가 궁금하고 무서웠다. 이렇게 내 손에 만져지고 보이는 신체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임신의 세상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나도 아름다운 포장지를 누리느라 내용물을 보려고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임신 기간의 기쁨을 누리느라 바빠서 신체 변화는 보여도 보지 않았고, 두려워도 무시했다. 사소한 일상의 체감은 모성에 비하면 너무나 시시하니까. 그 기간은 감사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해야 할 시기이니까. 그 두려움보다 아이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는 게 좋은 일이라고 하니까. 나는 정작 내 몸의 말은 무시하고 누가 했던 말인지 모르고 형태도 없는 세상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내 몸의 변화를 무시했고 모른 척했고 동시에 그 무서움이 들킬까 두려워했다. 나는 초경을 했던 5학년의 소녀가 초경 사실을 숨겼을 때처럼, 생리대를 사면 검은 비닐봉지나 에코백 저 끝에 감추어 가지고 오는 것처럼, 매일이 달라지는 내 몸의 변화에 여전히 몰래 두려워했다.



내 왼손 엄지 손가락에는 초승달 모양의 흉이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어딘가에 베어 꿰맨 자국이라고 한다. 내 왼쪽 무릎에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엄마가 어디선가 얻어온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대차게 넘어져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또 찬바람이 불때마다 시린 왼쪽 발목에는 아이를 안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혼자 넘어졌으나 아이는 놓치지 않았다며 뿌듯해 했던 어떤 날의 아침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아직 내 양손에는 점심을 먹고 나서 발라둔 핸드크림이 가을의 건조함에 열심히 대항하고 있다.



내 몸은 이렇게 내 삶을 기록하고 있다. 변화의 순간도, 아팠던 순간도, 좋았던 정서도 다 나도 모르게 담아내고 있는 게 내 몸이다. 내 몸이 겪어야 내가 겪는다. 게다가 지금 내 몸은 40년을 써서 하루씩 더 빨리 방전되고 채워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느껴진다. 오늘도 애쓰고 있는 내 몸의 경험은 내가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


감추지 말고, 몰래 두려워하지 말고 내 몸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때, 내 몸의 지문이 더 나다움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내 몸은 너무나도 확실한, 그저 '나' 이니까. 내 몸이 겪는 경험이 세상을 솔직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맞다. 이제 엄마의 몸인 나는 이 어깨에 무엇을 짊어지고, 내 손에 무엇을 안게 될 것인지 궁금한 날이다.



2015. 10월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