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품고 산다

육아감사일기, 출산, 엄마의 생각

by 주윤

하루 전체가 지연을 거듭하는 열차를 내내 기다리는 날이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목을 쭉 빼고 저 멀리를 바라보며 기차가 저기서 오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만 있다. 이런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오늘의 1분은 왕느림보 거북이의 속도로 딜레이에 딜레이를 거듭했다. 지구에게 좀 더 빨리 돌아줄 수 없냐고 간청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조바심이 마음을 뚫고 우주로 나가 지구를 좀 더 세게 밀어야겠다 마음먹은 그때, 숨이 꼴까닥 하고 넘어가기 바로 직전, 드디어 밤 8시 15분 전이 되었다.



아이를 낳은 지 이틀 만에, 나는 드디어 나의 아가를 만난다. 신생에 집중 치료실에 하루종일 누워있는 나의 아가! 나에겐 단 20분, 밤 8시부터 8시 20분까지의 짧은 면회시간이 주어졌다. 20분을 위해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발을 내렸다. 한 걸음씩 시작해서 20분씩 걷기 운동 5번을 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보다 내 마음이 더 두둥실 떠다녔다. 병원의 복도에 동그란 바퀴 4개가 달린 보조기구를 굴리며 내 마음도 함께 굴러간다. 하얗고 네모 반듯한 병원의 모서리에 둥근 마음이 울려 퍼진다.



밤 8시, 신생아 집중 치료실의 문 앞에는 두 손을 꼭 잡은 엄마 아빠들, 할머니들이 모였다. 각자 같고 다른 표정들이 그곳에 있었다. 화장기와 사회적 미소를 담은 표정의 세상에서 살던 나는 민낯의 얼굴들에 물먹은 수채화 물감처럼 감정이 눈물과 함께 퍼트려진 진심의 표정이 낯설었다. 아마 내 표정도 그랬으리라. 다만 우리 모두의 눈은 야무지게 닫힌 치료실 문에 고정되었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신생아 집중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제 미리 와본 남편을 따라 나의 아가가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어머나! 이게 뭐야! 왕 똥그라미다! 엄마 아빠 닮아서 갸름한 얼굴은 나올 수 없음을 알지만, 정말 컴퍼스로 그린 듯 똥그란 아가가 눈을 감고 누워있다. 첫날 썽이 잔뜩 나 보이던 사진보다 얼굴이 편해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생겼구나. 남편의 손바닥보다 작은 2kg 남짓의 40여 cm의 아가가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꼭 감고 누워있었다. 욘석이 그동안 나와 어디든 같이 가고 내 심장과 함께 리듬을 맞추던, 바로 너였구나!



광선치료를 받고 있는 아가를 나는 안아보지도 못했다. 그저 누워있는 작은 새, 나의 왕똥그리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아가를 두 손에 안고 내 심장에 네 심장을 맞추어 안고 싶었다. 그렇게 집에 가고 싶었다. 어서 집에 가자, 아가야.



병원의 날들은 언제나 그렇듯 나의 의지대로 되긴 이미 글렀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몰랐다. 나와 아가의 상태를 봐야 하니 토요일로 예정되었던 퇴원은 하루 미뤄지게 되었다. 입원을 오래 시켜주지 않는 3차 병원에서 하루 더 있으라고 하면 그 말은 절대 들어야만 하는 말이 맞다. 운동을 위한 병원 내 산책은 계속되었고, 병원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제야 옆 베드와 다른 입원실이 보였다.



옆 침대의 선한 얼굴의 부부가 입원해 있었다. 3주 째라고 했다. 그들은 평화로운 어느 날 갈비를 먹으려고 외출하던 중 부인의 양수가 터졌다. 30주가 채 안된 시기였고, 아직 아이를 낳기엔 주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폐 기능이 발달하는 34주까지 아이를 잡아놓기 위해 입원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주 일요일 자정에 유도분만을 앞우고 있다며 맑은 웃음을 띠며 말해주었다. 잘되었네요. 하며 나도 힘껏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는 식사량도 많고 늘 야식을 먹는 듯한 그 부부를 보며, 저 산모는 참 많이 먹는구나. 먹는 걸 좋아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나는 내 마음대로 타인을 해석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유도분만을 해도 8달을 채 못 채우고 아이를 출산해야 하기에 아기의 체중을 2kg이라도 늘리기 위해 열심히 먹어야 했었다. 다행히 그동안 아가도 배 안에서 버텨주어 드디어 2kg가 되었으니 유도분만이 가능한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열심히 양분을 만들어준 엄마와 그 안에서 씩씩하게 버텨준 용감한 아가는 잘 될 수밖에 없는 아이가 맞다. 더욱이 출산 중 산모와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그녀는 무통 주사 없이, 쌩으로 낳아야 한다고 하며 더 활짝 웃었다. 브라보. 맙소사. 용기 있는 엄마는 씩씩이를 낳을 수밖에! 갓 블레스 유! 플리즈.



어느 아침 회진 전, 간호사 선생님께서 우리 병실에도 회진을 위해 전등을 켜주시며 커튼을 걷어달라고 하고 나가셨다. 나는 내일은 꼭 퇴원할 수 있는지 반드시 물어보리라! 굳게 다짐하며 침대 등받이를 세워 앉았다. 그렇게 남편과 집에 가면 무얼 해야 하나, 유축기는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가, 기저귀는 무엇을 사고, 분유는 무엇을 사야 하는 건가. 우리가 사놓은 것은 배냇저고리 하나뿐이고, 그것도 아직 빨아놓지 않은 걸 어쩌나. 하며 회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맞은편 병실에서 갑자기 산모의 오열하는 소리와 병동을 울렸다. 그 울음의 깊이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무게를 지녔음을 나는, 아니 누구든 알 수밖에 없었다. 온 가족의 눈엔 눈물이 흘렀고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든 참아보고자 두 눈을 가려도 그 눈물은 가려지지 않았다. 결국 가족 중 한 명이 그 병실의 문을 닫았다. 그 방의 회진은 취소되었다.



아마 교수님 회진 전, 남편이 아내에게 현재의 상태를 미리 알려준 것이지 싶다. 알고 싶지 않은 아픈 사실을. 3차 병원의 산부인과에는 여러 아픈 사실들이 있다. 하혈을 해서 응급차를 타고 겨우 병원에 왔는데, 이미 아이는 유산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던 부부. 쌍둥이를 입원한 임산부는 조산기로 입원을 하고서는 배 안의 두 아이가 태어나서 커갈 수 있을 만큼 키워야 했기에 무려 40kg을 찌웠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다행히도 출산에 성공했는데, 한 아이가 출산 과정에서 엄마의 골반에 눈가가 다 스치는 바람에 태어나자마자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고, 무엇보다 산모는 출산 당일에 갑자기 앞이 안 보이는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나는 알지도 못해서 초유를 유축기에 짜내서 바로 버렸지만, 어떻게든 엄마의 모유를 먹이고 싶어서 매일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올라가는 날 모유를 가져가던 산모도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우리, 각 개인은 모두 각자의 울창한 이야기를 가지고 만들며 살아간다. 나만, 내 아이만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사는 건 아니다. 내 아이와 내가 태반조기박리로 생사의 문 앞에서 가까스로 살아돌아왔다고해서 우리 둘만 특별한 것도 아니다. 같은 오선지에 그려지는 삶이지만, 화성, 음표의 높낮이와 선율의 전개, 셈여림과 빠르기는 각 악보마다 다르다. 같은 악보도 연주자에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다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는 그 다름을 알아채지 못한다. 타인 삶의 울창함을 알지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삶은 납작하기만 하다.



그동안 내 세상이 그랬다. 내가 아는 만큼으로 타인을 짐작해 왔다. 먹는 걸 좋아하나 봐 하는 나의 무지한 생각은 나의 아가가 세상에 나와 숨을 쉬고 성장할 수 있을, 그저 딱 2kg으로라도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 전혀 닿을 수 없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 하고 궁금해하고서 나는 그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 그저 내가 판단하고 내 생각대로 상대를 해석한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 한 명을 더 추가하며 살아간다. 다 그럴만했을 텐데. 나는 그저 내 두 발이 딛는 면적만큼만 좁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직은 혼자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나도 이젠 엄마가 되었다. 이전에 살던 내 삶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문이 열렸다. 새로운 세상은 공간과 역할만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은 그대로 있었고, 내가 그 세상을 보는 마음과 상상력의 면적이 좀 더 넓어지는 것이리라. 더 이상 164cm의 높이에서만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내 아이가 위협적인 사고, 사랑을 쥐고 태어났듯,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리라. 우리 모두 삶의 선율을 존중하리라. 어쩌면 이렇게도 엄마가 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