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선택을 하고도 웃으며 동료를 대하는 사람을 볼때가 있다. 이기적 선택이 그에게 가져다준 상대적 편안함, 그럼에도 원만한 동료와의 관계를 볼때면, 나는 한동안 세련되지 못한 행동으로 허우적거린다.
공연히 마음에 일어난 흙탕물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떠올라 윤슬의 반짝임이 비출때까지 며칠이 걸리곤 한다. 그때 가만히 있는 시간만큼 도움이 된 것은, 맑은 물을 부어주는 일이었다. 그 맑은 물은 주변 지인들과 온기가 담긴 연대였다. 서로의 안녕을 나누고, 염려하고, 지지하고, 함께라는 눈빛을 주고받는 맑은 물이 부어질 때마다 마음은 드디어 맑아졌다.
그동안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지지받아왔다. 농업혁명 이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나뉠 때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소시오패스들이 지배계급이 되는 사례, 이기적 선택이 경제적 부를 가져오는 사가 누적된 판단이다.
더욱이 인간은 생존을 위해 위협적인 사건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자연스럽게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실험,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방관자 태도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편집된 진실에만 핀조명을 비춰왔다. 우리를 지배한 인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실험과 사건에서 부정적인 결과에 열을 올려 수집하고 편집하느라, 공감하고 연대하고 서로를 안아주었던 인간의 긍정적 태도는 잘려나갔다.
실제 우리의 삶은 실험실과 달랐다. 1차 세계 대전에 영국군과 독일군은 성탄절 휴전을 하고 함께 술과 성가를 나누며 놀았고, 실제 군인들은 전쟁에서 실탄을 서로에게 쏘기보다 허공에 쏘는 사례가 더 많다. 공격박은 키티 제노비스는 방관자들이 아닌 절친한 이웃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은 보는 대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현상을 해석하는 존재다. 인간을 선하게 볼 것인가, 악하게 볼 것인가는 개인의 신념이고 해석의 틀이 될 수 있다. 다만, 어떤 해석의 틀을 가지고 있느냐는 한 사람의 삶과 사회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나는 선한 쪽에 서본다. 살아가며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그때마다 뒤통수도 맞고, 뒷담화도 하고, 화도 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보다 평화로운 날이 더 많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 맑은 물을 주어줄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너무나 보람찼을 3월 첫 주를 보낸 금요일 밤. 나와 남편, 아들은 서로를 꽉 안아주었다. 구태의연하고, 때론 거친 날도 있겠지만 우리는 꽉 안아줄 서로가 있다.
이 셋이 더 확대되어 있다고 믿는 것, 세상에 대한 신뢰감은 희망을 가져옴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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