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급식은 어땠어? 오늘 자장면이었잖아. 그렇지? 완전 맛있었겠다.”
주윤이는 평소 가리는 반찬도 많고, 먹어보지 않은 새로운 반찬에 젓가락을 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교하는 주윤이에게 내가 건네는 데일리 메시지 중 하나는 급식 메뉴에 오늘은 또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매달 말이 되면 다음 달 주윤이 학교 식단표를 찬찬히 본 나는 늘 생각한다.
‘너무 잘 나오는데!’
‘나에게 이런 점심식단이 주어진다면! 나는 매일 아침부터 기쁠 거야.’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또 든다.
‘집에서 못해주니까 이렇게라도 먹는 게 다행이지.’
된장국, 애호박나물, 콩나물, 김치찌개, 멸치볶음 이 정도가 내가 인터넷 검색 없이 지금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다. 내 주방의 미션은 다섯 개를 일주일 간 돌려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달걀이라는 신의 선물이 담긴 은혜로운 달걀 프라이, 달걀말이를 추가할 수 있고, 최고봉은 생선과 고기 굽기이다. 그리고 상추쌈. 이렇게 놓으면 5대 영양소를, 특히나 단백질과 채소를 잘 먹였다는 뿌듯함이 남는 저녁 식탁이 된다.
이런 나에게 식단표의 음식들은 어나더 레벨이자 종합 선물세트이다. 식단표에는 내가 먹어는 보았으나 만들 수는 없는 온갖 맛있는 것들이 겸손하게, 그리고 뭐 그냥, 별거 없어하며 무심하게 툭툭 놓여있다. 그렇다. 늘 음식 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뭐 별거 없어. 그냥. 그냥.’
그 고수들의 '그냥'들이 모이면 무심한 듯 시크한 무광 은색의 급식판은 어마어마한 세계가 된다.
기본적으로 한 달 동안 매일의 밥과 국이 다 다르다. 미역국, 소고기 뭇국, 콩나물, 된장국도 여러 종류, 꽃게탕, 모둠 어묵국, 육개장은 기본이고 여름엔 미역 오이냉국, 닭다리 닭죽과 같은 계절메뉴의 섬세함도 담겨있다. 밥의 종류도 이렇게 많다는 것을 급식표를 보고 알게 되었다. 옥수수밥, 기장밥, 소고기 콩나물밥, 현미찹쌀밥, 잡곡밥, 후리카케 주먹밥, 보리밥, 볶음밥 등이 툭툭 놓인다. 이쯤 하면 밥의 팔도 유람 정도이다. 밥과 국이 이런데 반찬과 후식은 말할 것도 없다. 매일이 다른 밥과 국, 반찬들이 한데 모인 급식판의 세계는 우주적 앙상블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관심이 없다. 그저 토마토가 나오지 않기를! 김치는 배추김치, 채소는 상추만 나오기를! 초무침! 오 노! 특히나 오징어 미나리 초무침이 나오던 날의 긴장을 나는 기억한다. 나도 아이도 초 긴장을 하며 학교를 갔던 아침이었다. 엄마는 온 우주의 기운으로 존경하는 식단표를 아이는 긴장하며 보는, 우리의 동상이몽.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자장면과 찹쌀 꿔바로우! 믿고 보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 우리 주윤이에게도 하루쯤 쉬어가는 날이 있어야지 싶은데, 그게 오늘이다.
“엄마, 오늘은 제가 밥은 4번째 정도로 먹었어요!”
“우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었어?”
“비법이 있었지요!”
“비법?”
“네! 옆에 정우가 숟가락으로 자장면을 먹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저도 배웠지요. 저도 따라서 숟가락으로 먹었더니 빨리 먹게 된 거예요.”
“오! 정우에겐 그런 비법이 있었구나. 친구들에게는 다 배울 게 있어. 그치?”
정우는 학년 초 주윤이가 불편해하던 친구였다. 서로 앞 뒤 번호였던 탓에 학년 초 자리도 줄을 설 때도 앞 뒤 자리였다. 학년 초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던 어느 날 주윤이가 말했다.
“정우가 뚝배기! 하고 머리를 때리거든요.”
“응? 머리를? 그때 주윤이 기분이 어때?”
“괜찮아요. 재미있더라고요.”
“아, 그래? 혹시 주윤이 마음이 달라지면 엄마한테 말해.”
일단은 주윤이가 괜찮다고 하기에 두었지만, 역시 예상은 맞았다. 몇 주 후 주윤이는 말했다.
“엄마, 이제 정우가 머리 때리는 거 기분 나빠요. 이제 안 괜찮아요.”
“그럴 때는 주윤이가 하지 마! 하고 분명히 말해. 주윤이도 처음엔 괜찮다고 했었잖아. 정우는 아마 주윤이도 재미있어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라. 놀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이제 싫어졌다면 싫다고 정확하게 표현해. 웃거나 그러지 말고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단호하게 말해야 해. 엄마한테 해봐.”
“근데 그래도 하면 어떻게 해요?”
“주윤이가 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는데 또 하면 그땐 선생님께 말씀드려야지.”
“선생님께 말씀 안 드려도 선생님께서도 알지 않을까요?”
“아니, 다른 사람과 주윤이는 생김새가 다르듯이 생각이 달라. 주윤이의 생각을 상대에게 말해야 상대방이 알게 되는 거야. 상대가 내 생각을 당연히 아는 건 마술이야.”
잠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볼까 고민도 했지만, 주윤이가 자신의 목소리와 대처를 키워가길 바라며 며칠을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그즈음에 ‘친구를 때리지 않아요.’하는 선생님의 메시지가 며칠 동안 알림장에 적혀 왔다. 주윤이는 정우에게 “하지 마!”하고 말했다고도 했고, “또 그러면 선생님께 말씀드릴 거야.”하고 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정우도 바로 “미안해.”하고 사과하고는 곧장 그 행동을 멈추었다고 말했다. 우리 귀여운 일 학년들! 이렇게 형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우의 행동이 멈추긴 했지만 그 후에 주윤이는 정우를 장난꾸러기라고 말했다. 유치원 때부터 주윤이에게 장난꾸러기라는 것은 약간은 불편하고 못 미더운 친구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래도 주윤이가 ‘하지 마’라고 하자 행동을 멈춘 것도, 사과를 한 것도 바로 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나도 학창 시절에 반가운 장난으로 친구의 등을 때리며 안녕! 했는데 친구가 아프다고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너무 놀랐고 내 손이 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장난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반성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는 그다음부터는 장난으로라도 친구를 내 손으로 때리지 않았다.
지금 정우는 그때의 나보다 어리다. 내 장난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예상하기 어려운 여덟 살이다. 나는 정우가 장난기와 짓궂은 면을 가졌고 활동적이면서 사교적인 친구인가 보다 하고 여기게 되었다. 아마 학년 초 주윤이가 정우에게 호감을 느낀 것도 아마 정우의 이런 장난스러운 면 덕분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른 모습에 대한 호감은 여덟 살에게도 찾아오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우리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불문율이라는 게 있다.
“아, 정말! 사람이 느긋한 게 여유 있고 넉넉해 보여서 결혼했는데, 너무 게을러요!”
그렇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어떤 면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정작 그 면이 가장 큰 단점이 되어버리는 그 불상사. 다름에 대한 호감이 오랜 시간에 묵혀졌을 때, 그 다름이 나와 너무 달라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면이 되어버리는 새드엔딩. 아니 엔딩이 아니 새드 온고잉.
주윤이도 그 과정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시간이라는 것이 호감을 단점으로 묵히기도 하지만, 단점의 구름 사이에 매력 포인트를 반짝 비춰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온전함이 잘 바뀌지 않듯, 타인의 온전함도 잘 바뀌지 않는다. 당연히 나와 다른 면에 대한 호감은 불쑥불쑥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단, 그것은 발견하는 자의 몫.
주윤이와 달리 보다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며 유머러스했을 정우. 무엇보다 정우는 밥을 아주 잘 먹는 미덕을 가진 친구였다. 언제나 정우는 밥을 골고루 쓱쓱 먹었고, 그 속도도 빨랐다. 주윤이와 아주 다르고도 다른 면이었다. 그 정우의 치트키는 숟가락 신공이었던 것이다. 주윤이는 그 다른 면을 포착했고, 호감을 넘어서 배워야겠다 여겼나 보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제 주윤이에게 정우는 급식시간 능력자, 급식소의 멘토가 되었다.
나는 친구의 행동을 보고 “배웠어요.”하고 말하는 주윤이의 태도가 좋았다. 사실 엄마는 매일 깜박 쟁이라고 무시하곤 하는데 친구에겐 배우다니. 그것도 한때 다름에 불편하게 여기던 친구에게.
나 역시 나와 성향이 어느 정도 다른 친구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편이다. 항상 현실에서 10cm쯤 발을 떼고 있는 내 생각을 현실적인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들을 수 있었다. 내 경험과 생각만으로 정리했던 것을 나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에 대처 하는 아는 언니에게 말했을 때 또 다른 영감을 얻었던 적이 많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위안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늘 그 틀대로 생각하고 살게 된다.
대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가끔 당혹스럽다. 내 생각을 듣고 ‘잉?’하는 반응들, ‘내 생각에는...’하며 나와 결이 다른 생각을 듣게 되면 순간 잠시 머리가 멈춘 듯하거나 얼굴에 살짝 열이 오르기도 한다. 그 순간은 나를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집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삶의 생각들과 대처들을 만나고 온 것이 맞다. 달라서 불편했던 타인의 생각들 덕분에 나는 내 삶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얻어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갈 수 있었다. 많은 순간, 나와 다른 생각들이 스치는 불편한 대화는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나와 다른 사람에게 늘 호감을 가져왔고, 그 안에 약간의 공통점을 찾으면서도 그들의 다른 생각을 듣는 것을 원했다. 그런 대화들은 그렇게 내 삶에 영감을 주고 나의 생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주윤이도 그렇게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와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서로 불편한 점은 분명히 밝혀서 서로를 알아가는 법. 그리고 서로 달라서 좋은 점은 배울 줄 아는 미덕. 그렇게 내가 가진 기본 성향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와의 상호작용하는 것은 스스로 더 풍요로운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여린 연둧빛 작은 잎으로 시작했던 봄의 하루들이 모인 지금, 여덟 살은 자신의 본래의 빛깔에 새로움의 햇살을 받아 다채로운 초록의 면적을 넓혀가는 건강한 여름을 키워가고 있었다.
“주윤, 오늘 소고기 뭇국은 어땠어?”
“엄마, 오늘은 뒤에서 3번째로 먹었어요.”
“아 그래?”
“네, 오늘도 정우를 배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후식이 수박화채였어요. 저는 후식은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정우는 후식을 먼저 먹더라고요. 그래서 못 따라 했어요.”
“아, 그래. 주윤이는 후식은 나중에 먹는 스타일이구나.”
사실 난 알고 있다. 우리 주윤이는 수박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래서 차마 수박을 먼저 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나도 그렇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 이후, 나는 내 생각에 상대의 생각을 배합시키는 것이지 상대의 생각이 내 생각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어서 다른 생각은 조언이 되어줄 뿐 나는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고유의 빛깔은 그 면적도 넓고 힘도 세다. 노란색 바탕의 한 부분에 파란색으로 붓터치를 한번 한다고 해서 그 부분이 파란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은 어디 가지 않는다. 내 노랑은 거기에 남아 파랑 붓터치를 연둣빛으로 해석한다. 내 고유의 노랑에 빨강, 초록, 파랑의 새로운 빛깔의 붓터치가 만날 때마다 나는 보다 다채로운 빛깔의 내가 된다. 하지만 그 색들은 노랑과 만난 빨강이고 노랑과 만난 초록이다. 새로운 빛깔들과의 만남으로 나의 색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다채로워지는 과정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의 노랑을 유지한다. 역설적이게도 내 고유의 노란색은 다른 색들과 만나 다채로워진 빛깔들 속에서 더 또렷하고 선명한 노랑의 빛을 뿜는다. 내 고유성과 다름의 만남은 그렇게 나만의 색을 담은 다채로움으로 나와 함께 성장한다.
주윤이는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빨간색은 좀 힘이 센 색이다. 그 선명한 빨강과 또 다른 어떤 색들이 만나서 주윤이의 빨강이 좀 더 다채로워질까. 빨강으로 고유함이 돋보이면서도 다른 색과의 만남으로 새로워질 주윤이의 오늘들이 기대된다.
그리고, 쌀과 연근등의 하양, 된장국이나 달걀의 노랑, 빨간 김치와 초록 나물, 노랑 달걀, 간장의 황토빛이거나 고추장의 붉은 빛일 고기, 아이보리 생선, 검정 콩자반이나 김, 파래나 미역등 해조류의 초록들이 조화로운 급식판의 세계와도 어서 친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