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일이 예정한 대로 찾아와 준다는 안정감은 때론 다행으로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TGIF! 금요일도 아닌, 수요일이 매주 찾아온다는 건 지루하고 따분한, 아니 피로의 정상을 찍는 일일 수도 있다. 수요일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눈 앞에 다가온 수요일에 인사는 커녕 눈치채기도 어려운 일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집 여덟 살에게 수요일은 다르다. 당연히 오는 날이 아닌, 기다려서 만나는 날이다. 혹시 우리 집 여덟 살은 지난 수요일 저녁부터 오늘의 수요일을 기대하며 기다리진 않았을까? 수요일은 우리 둘의 수요 외식회 날이니까.
“주윤아, 오늘은 무얼 먹어볼까?”
“엄마, 거기 있잖아요. 지난번에 갔던 그 돼지 고깃집. 거기 가요. 거기서 고기랑 누룽지 먹고 싶어요.”
“좋아! 그러면 피아노 치고 내려오면 바로 가자! 엄마가 피아노 데리러 갈 때 오늘은 차 가지고 갈게. 잘 다녀와!”
한창 고기를 좋아하는 주윤이는 달달한 양념 돼지갈비를 먹고 싶었나 보다. 쉽게 오케이! 사실 처음 이 식당을 가기 전, 나는 얼마간은 긴장했었다. 단 둘이 고깃집에 간다니! 평소에 외식을 하면 남편이 고기를 굽는 편이어서 늘 손 놓고 있는 편인 내가 입 짧은 주윤이를 데리고 단둘이 고깃집이라니! 나는 양념돼지갈비를 태우지 않고 구울 수 있을까? 게다가 입 짧은 주윤이를 챙겨가며? 한 팔로는 고기를 굽고, 한 팔로는 가위로 자르고, 한 팔로는 주윤이 쌈 싸는 걸 도와주고, 한 팔로는 내 고기를 먹어야 할 텐데. 그러면 나는 팔이 최소한 2개는 더 필요할 텐데. 가능할까?
“주윤아,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식당 앞에 돌로 만들어진 해태상에 올라타 이미 신나 있는 주윤이의 손을 잡고, 나는 긴장이 잔뜩 뭍은 작은 한 마디를 건넸다. 물론, 나의 그 말은 초겨울 바람에 실려 주윤이의 귓등을 그쳐 스칠 뿐이었다.
메뉴판을 열자, 오예! 구워져 나오는 갈비 메뉴도 있었다. 순간 내 목을 껄끄럽게 했던 불안이 쑤욱 부드럽게 쓸려 내려갔다. 구워져 나오는 갈비라니! 어쩜 이리 친절한 고깃집인지! 역시 잘되는 집은 나의 불안까지도 잠재워주는 섬세함과 너그러움을 갖추고 있었다. 나의 심리적 버퍼 역할을 해준 메뉴는 그 맛도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 맛도 있고, 심지어 구워 나오는 메뉴도 있으면 충분했다. 이렇게 나와 주윤이에게 고깃집의 문턱은 스윽~하고 낮아졌고 쉽고 좋은 곳이 되었다.
“엄마, 오늘은 우리 구워 먹는 거 어때요?”
“응?”
“엄마, 그래야 우리가 조절해서 먹지요.”
오! 우리 주윤! 도전장을 내미는 것인가! 주윤이가 내게 건넨 한 마디에 나는 좀 설레었다. 아니 이런 걸로 설레다니 내가 너무 아들바보인가 싶다고? 물론 너무나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는 새로움을 담은 그 말이 좋았다. 익숙한 상황에서 새로운 작은 변화를 시도해볼까? 하는 가벼운 제안. 그런 제안은 보통의 익숙한 행동에 낯설음 향신료 한 스푼을 넣는다. 그것은 익숙한 슴슴한 맛의 국수에 가벼운 고수 한 잎이고, 익숙한 빨간 방울토마토에 으깬 마늘과 소금, 그리고 쌉싸름한 바질 몇 잎을 넣는 것과 같다. 그 순간 익숙한 상황은 가벼운 긴장과 기대로 떨린다. 그리고 낯선 향이 피어오르는 접시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가져온다.
“그래! 오늘은 우리가 구워 먹어보자!”
숯불이 들어오고, 테이블이 따듯해졌다. 이제 어느 정도 달궈진 석쇠에 양념돼지갈비를 올릴 차례. 테이블이 높았던 주윤이는 갑자기 일어서서 집게를 든다. 제 팔뚝 길이의 집게로 두툼한 돼지갈비를 한 대 집어 올린다. 주윤이 집게에 걸린 돼지갈비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집게의 길이와 돼지고기의 무게를 컨트롤하기에 주윤이의 손과 팔에는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도 여덟 살 형아는 주의를 기울여 바닥에 떨어트리지 않고 석쇠에 고기를 두 덩이나 올려놓았다. 성공! 오늘의 이 작은 움직임이 주윤이의 무딘 손과 팔에 경험의 흔적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이제 내 차례. 나도 처음이다. 양념돼지갈비를 굽는 일. 너무 뒤집으면 고기가 맛이 없어진다 배웠고, 또 너무 뒤집지 않으면 양념이 타버린다는 그 섬세한 작업이 남아있다. 내게는 우리의 양념갈비 2인분이 남았소! 그래도 나는 우리 집 프라이팬에 삼겹살과 스테이크 좀 구워본 여자다. 고기 굽기의 정석이라 함은 팬과 닿은 면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면서 프라이팬에 닿지 않은 면에 열기가 살짝 느껴질 때 뒤집는 것으로 안다.
“주윤아, 실은 엄마도 양념갈비 굽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돼. 안 타야 하는데.”
“엄마, 태우면 안 돼요. 태운 거 먹으면 안 되거든요.”
“주윤아 잘 봐봐. 고기가 타나 안타나. 엄마가 바로 뒤집을게.”
집게를 집은 나와 주윤이는 우리 둘의 유전자로 빚은 똥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고기를 주시했다. The time is now! 타이밍님이 오셨다. 지금이다. 차르르르~~~ 소리와 함께 뒤집으니 크! 해내버렸다.
“주윤아! 안 탔어! 안 탔어!”
엄마의 능력이 잔뜩 담긴 노릇노릇 윤기 나는 고기 한 점이 주윤이 입속으로 들어간다. 이 순간 내 어깨는 식당 천장에 닿아있다. 마음 같아선 여기 고깃집 고기를 다 내가 구워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주윤아, 어때?”
우리 여덟 살은 언제나처럼 눈웃음과 함께 오른손 엄지를 추켜올린다. 나도 그제서야 낯설었던 집게를 놓고 날렵한 젓가락을 집어 고기를 한 입 먹는다. 역시나 맛있다. 그래, 성공이다. 이제 나는 양념갈비도 타지 않게 굽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나도 먹고, 주윤이 쌈 싸는 것도 도와주며 배가 부른 만큼 마음도 불렀다.
이제 대미를 장식할 솥밥 차례이다. 고기를 먹고 누룽지 먹기를 좋아하는 주윤이의 주문에 흰쌀밥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둘 다 사로잡은 똑똑한 메뉴가 도착했다. 솥밥을 열자 고소하고 가벼운 밥 냄새가 피어오른다. 편안해지는 그 냄새 앞에 내 마음은 분주하다.
“엄마, 지난번에 볼에 상처가 났잖아요. 그건 다 괜찮아졌는데, 이제 입 안이 아파요.”
“아 그래? 잠깐만! 주윤아, 이거 뜨겁거든. 좀 멀리 가봐.”
나는 뜨거운 솥에 행여 주윤이가 닿을까 싶어 주윤이 먼 곳에서 밥을 덜어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주윤이의 말에 추측만을 넣어 대답했다.
“엄마, 왜 그런 거예요?”
“아 그건 아마 어제 뜨거운 걸 먹어서 입 안이 데었나 봐. 하루 지나면 괜찮아져.”
솥밥이 정리되자 이제 정신이 든다.
“한 번 볼까? 아~ 해봐!”
어?! 어?! 이건! 주윤이가 아프다고 했던 아랫니 뒤에 하이얀 점이 방긋! 하고 보인다. 안녕! 나 나왔어! 하고 작고 하얀 새 이는 붉은 잇몸의 두터운 이불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힘을 내고 있었다. 작고 하얀 꽃이 피어있었다.
“주윤아! 새 이가 나고 있어!”
“네?”
“주윤이 드디어 새 이가 났네! 주윤이가 아프다고 했던 곳을 엄마가 봤더니, 아랫니 뒤쪽에 이미 새 이가 방긋! 하고 나와있는 거야. 우와~ 축하해! 드디어!”
“우와! 드디어! 엄마 드디어 났어요?”
“그러니까. 오늘이네! 엄마가 치과 전화해볼게. 예약되는지 보고 오늘 바로 가자!”
올해 초, 주윤이는 유치원 친구들은 다 유치가 빠지고 새 이가 나는 것 같은데 자기는 아직도 이가 빠지지 않는다고 걱정을 했었다. 그 말에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니 아마도 새 이는 올해 가을, 주윤이 생일 지나고 빠질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주윤, 밥 먹고 바로 가면 되겠다. 그런데 그전에 흔들리진 않았어?”
“엄마, 한번 만져볼게요. 조금 흔들려요.”
“그래, 흔들리면 잘 빠지거든.”
그때부터 주윤이는 밥은 없다. 계속 아랫니만 손가락으로 흔들고 있었다.
“주윤, 그러면 옆에 상처가 생기거나 부어서 빼고 나면 더 아파.”
“엄마, 그래도 많이 흔들면 뺄 때 안 아프겠잖아요.”
여덟 살의 작은 소란이 귀엽기만 하다. 그리고 벌써 이 만큼 컸구나! 하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언제 이만큼 큰 걸까? 내 마음에도 찌르르 하는 보람이 알알이 맺힌 소란들이 뛰어다닌다. 남편에게 '우리 곧 주윤이 첫니 빼러 갈거야!'하고 메세지를 보냈다. 남편도 호들갑스러운 답장을 보냈다. 아마 그 시간, 남편이 앉아있었을 한평 남짓의 사무실보다 남편의 호들갑이 더 컸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둘러 식사를 정리하고 마감 30분을 남기고 동네 치과에 도착했다.
“엄마, 긴장돼요. 많이 아플까요?”
“엄마, 제 헌 이를 모으는 건 어때요?”
“엄마, 사진 찍어주세요.”
“엄마, 안 아프겠지요?”
“엄마, 새 이는 얼마나 클까요?”
병원에 도착한 주윤이는 병원 내 놀이시설에서 놀면서도 마음속에 두서없는 말들을 해낸다. 긴장과 두려움, 새 이에 대한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이만큼 컸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이 배어있는 그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자신만만했다.
정기검진 외에는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주윤이는 두려움과 긴장을 가득 담은 채 체어에 누웠다. 선생님께서 기구로 그 작은 이를 만지자, 예상치 못한 주윤이는 손을 번쩍 들어 움직였다.
“주윤아, 괜찮아. 움직이면 다치니까 움직이면 안 돼.”
나는 주윤이의 손을 있는 힘껏 눌렀고, 주윤이의 눈에는 긴장과 무서움의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아아아아!!”
눈 깜짝할 사이 그 작은 이는 슝! 빠지고 그곳엔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주윤이는 반은 웃고 반은 울며 체어에서 일어섰다.
“주윤아! 잘했어. 잘 빠졌어! 진짜 대단하다. 어쩜 이렇게 컸어!”
“엄마, 원래 이는 어디 있어요?”
“응! 선생님께서 보라색 통에 넣어 목걸이로 만들어주셨어. 이거 목에 걸고 가자!”
나오는 길, 치과 앞에서 치즈~하며 똥그랗게 구멍 난 이를 자랑스럽게 보이며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 나와 주윤이는 자부심에 가득했다. 이만큼 성장했다. 그 작은 빈틈에는 이제 새 이가 날 것이다. 비록 수십 개의 이 중에 단 한 개이지만, 그곳엔 새로운 이가 난다.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들이 다가올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부터 주윤이는 어제의 주윤이와 질적으로 다른, 성장을 해낸 어린이가 된 것이다.
“주윤아. 이것 봐. 이렇게 우리가 계단을 오르잖아. 계단을 오를 때는 발을 들어 올리느라 힘들지만, 그래야 다음 계단으로 나를 옮기듯이, 오늘 주윤이가 그러게 한 거야. 주윤이는 이를 뽑을 때 무서웠지. 그 과정을 겪고, 이제 주윤이는 윗 단계의 계단으로 올라온 거야. 축하해. 대단하다, 우리 주윤. 이렇게 스스로를 키웠네!”
“엄마, 그렇지요? 이제 또 어떤 이가 빠질까요?”
집에 돌아온 나와 주윤이에게는 여전히 흥분이 남아있었다. 주윤이 이가 빠졌어요! 하고 빠진 이를 드러내며 사진을 찍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내 자랑을 했다. 남편이 퇴근하자 주윤이는 우다다 달려 나가서 아빠에게 빠진 이를 자랑했다. 자신의 성장에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는 주윤이의 활력은 참 아름다웠다. 언제 이만큼 컸나 하며 세월의 빠름을 느끼며 아쉬워하는 나의 마음은 주윤이의 명랑한 활력에 점령당했다. 나도 남편도 주윤이 덕에 뿌듯했다.
여덟 살 주윤이는 이제 새 이를 기다린다. 오늘부터는 또 다른 이가 흔들릴 것이다. 그 선명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주윤이는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그 자랑스러운 과정을 경험할 주윤이를 생각하면 뿌듯함이 온 마음을 채운다.
주윤이의 확실한 성장의 한 걸음 옆에 나도 여전히 세밀한 성장을 하고 있다. 그 시작은 익숙한 나에게 찾아오는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시작이 비록 거창하진 않더라도 변화가 찾아온다면 덥석 손 잡아볼 필요가 있다. 사소한 변화는 어쩌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먼발치에서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자부심을 만나게 준다.
저녁을 하기 싫은 게으름에 제안했던 수요 외식회는 입 짧고, 아직은 활동적인 여덟 살 아이를 데리고 단 둘이 외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켜주었다. 게다가 이제 나는 양념갈비를 타지 않게 구울 수 있는 기술도 습득했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에 나는 주윤이와 단둘이 여행을 계획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작은 시작은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시도를 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