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로스쿨 오지 마세요

by 꿀우유

1. 어떤 꿈은 꾸기만 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기억하는 한 10대 시절 대부분 내 장래희망은 법조인이었다. 때문에 로스쿨 합격 발표를 받은 당일은 당연히 기뻤다. 한편으로는 익히 들어온 로스쿨의 지옥같은 공부량이라든가 살벌하고 경쟁적인 분위기, 소위 ‘로시오패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 불길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엄습해 오고 있었기에, 마냥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실제로 로스쿨에서 생활은 아름답지도, (설령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게 된다고 해도) 미화될 정도로 녹록지도 않았다.


1. 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살면서 딱 3번 가족들에게 ‘정신병을 발사’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법학적성시험(LEET) 전날이었고, 두 번째는 로스쿨 1학년 여름방학 때 동생과 도쿄 여행 중 로스쿨 첫 성적 발표 1시간 전이었고, 세 번째는 변호사시험을 마친 당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로스쿨과 관련한 사달이다.


1.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신체든, 정신이든 건강했는데 입학한 후 잔병을 달고 산다든가 심지어 정신과를 다니는 친구들을 여럿 봤다. 그나마 정신과를 갈 수가 있다면 다행이다. 특강차 학교를 방문하신 정신과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법관이나 검사 임용 과정에서 정신과 병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선생님 또한 “여러분들에게는 마음이 힘들 때 정신과에 방문하라고 섣불리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하셨다.

나야 애초에 내신 성적이 나빠 재판연구원이든, 검사든 다른 세상 얘기지만, 나보다 훨씬 공부를 치열하게 열심히 하는 검사, 재판연구원 지망 친구들이야말로 정신이 고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정신과 병력이 임용에 어떤 불이익으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으니 치료를 받으러 갈 수도 없겠지. 함께 특강을 들으셨던 우리 학교 교수님은 며칠 후 이 특강 내용을 두고 “그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를 안 받고 판사니 검사 자리에 뽑혀 놓으니깐 우리나라 사법계가 그 모양이다.” 하셨다.


1. 다음 날이 밝아오는 것이 두렵다. 자기 직전까지 공부를 하고, 다음 날 일어난 직후 바로 공부를 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잠들기도 싫고, 일어나기도 싫다.


1. 민사소송법 중간고사에서 15점을 받았다. 50점 만점이다. 그날 처음으로 ‘스트레스성 두통’을 느꼈다. 타이레놀을 몇 알이고 삼켜도 사라지지 않는 두통. 앉아 있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지끈거리는 머리.

훗날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동생은 “언니는 인생에서 시련을 너무 안 겪어봐서 그래.”라고 했다. “그러니까 시험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힘든 거지. 학교 시험 그게 뭐라고. 좀 조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변시도 아니고.” 그 말 대로, 내가 그동안 인생을 너어무 순탄하게 살아서 겨우 시험 성적 하나로도 이만큼이나 고통받는 걸지도 모른다. 그게 맞다 한들 어쩌겠는가. 15점짜리 성적표를 받아 든 날 이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들 나는 변함없이 두통으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1. 나는 처음 가보는 카페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시켜놓고 친구들 두어 명과 수다 떠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그러나 로스쿨에 입학한 후로는 카페 방문은 고사하고 친구들과 공부 이외의 주제로 수다를 길게 떨어본 일도 많지 않다. 학교 밖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는 때야 종종 있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카페 음료는 테이크아웃, 다음 목적지는 열람실이었으니까.


1. 로스쿨을 다니는 내내 너무너무 너무 자고 싶었다.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다음 날 공부 계획이나 곧 다가올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걱정 없이 푹 자고 싶었다. 난 마음만 먹으면 14시간도 잘 수 있는 사람인데. 이어지는 맥락에서, 로스쿨 생활 중 손에 꼽게 불행했던 장면을 뽑으라면 나는 1번으로 1학년 첫 헌법 중간고사 1시간 전을 고를 것이다. 시험 시간이 애매한데다 민법, 형법에 밀려 상대적으로 공부를 덜한 헌법은 그야말로 벼락치기 수준으로 준비를 해야 했는데, 때문에 시험 당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 시험은 오후였다. 젠장. 시험 몇 시간 전에 정말 못 견디게 잠이 오는 고비가 몇 번 있는데, 까딱해서 푹 자버리면 아예 시험을 못 칠 수도 있었다. 급기야 같은 신세인 동기와 카페에서 만나 서로 번갈아 가면서 쪽잠을 자고, 깨워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 빈속에 커피를 3잔 연거푸 마시니, 정신은 너무도 피로하고 두통이 밀려오는데도 좀처럼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때 정말 울고 싶었다. 진짜로 엉엉.


1. 첫 전국 시험인 ‘형사재판실무’ 기말고사 1주일 앞둔 시험기간은 평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보다 몇 배는 더 지옥 같았다. 자기 직전에 읽은 판례 사실관계가 고스란히 꿈에 나와 기분을 잡친 적도 부지기수였다. 꿈속에서 내가 세관 공무원이 되어서 공항에서 물품들을 개봉하고 있었는데 ‘그런 작업은 행정조사라서 강제처분이 아니’라는 문구가 홀연히 떠오른다거나, 내가 범인이 되어서 경찰이 내 방 문을 쾅쾅 두드리는데 USB를 밖으로 던지고 경찰이 그걸 집어들자 그제야 범인인 나는 ‘아차, 저거 내가 스스로 버린 거면 유류물이니까 경찰이 내 참여 없이 수색해도 되는데.’하고 생각한다든가. 그런 꿈에서 깨고 나면 잠을 자도 잔 느낌이 아니다. 정말 개운하지 못하고 찜찜한 꿈자리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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