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기록
법학적성시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사흘이 지났다. 말인즉 나로서는 굉장히 이른 시간인 오전 9시에 기상해 바로 책상에 앉는 생활을 시작한 지, 오늘로 나흘 차다. 수험 생활은 우려한 것보다 나와 이럭저럭 잘 맞다. 대입이 끝난 후 시험을 위한 공부는 완전히 손에 놓은 지 오래였다. 수험 기간에는 경직되고 틀에 박힌 생활 루틴을 고수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오묘한 활력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적어도 지루함에 잠겨 죽진 않을 테니.
내 성적은 엉망이다. 나날이 나빠지다 오늘은 아주 약간 나아졌지만, 여전히 바닥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기분이 성적을 따라간다면 난 아마도 매일 지옥 같은 우울에서 허덕이고 있었을 거다. 이대로 시험장에 들어가면, 그대로 끝장이겠군! 채점이 끝난 뒤 눈앞에 가득한 곱표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활력을 느끼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성적을 보고 아주 크게 절망하지도, 크게 기쁘지도 않은 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건 맞다. 매 순간, 특히 엉망인 채점지를 보고 나면 절망감을 털어내기 위해 ‘괜찮아, 할 수 있다, 못할 거 없다’를 되뇌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부단히 애쓰지 않아도 부정적인 생각, 예컨대 미래를 향한 막연한 불안이나 나에 대한 불신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 머릿속은 무한정 긍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하진 않지만, 최소한 부정적인 것이 자리하고 있지도 않다.
이유 모를 불안감은 여전히 이따금 불쑥 찾아와 기분을 수렁 속에 빠뜨리고, 몸에 밴 나태함은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러나 지금은 자잘한 모난 감정들은 눌러두고 앞을 바라볼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부디 남은 140여 일 동안 이 심지가 이어지길 바란다.
이제는 동문이 되어버린 D를 만났다. 먼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은 냉정한 이야기였다. 법학 ‘적성’ 시험은, ‘능력’ 시험이 아니라고. 타고난 적성이 결과를 좌우하는 시험이니,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러나 그가 덧붙이기를, 역으로 아쉬운 성적을 받아도 내 노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내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때의 실망감이었다. 정말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했는데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돌아오지 않을 때의 좌절감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 비겁한 심리를 방패 삼아 무엇이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본 적도 크게 없었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 편이, 크게 기대했다 실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할 수 있는 만큼만 바라고, 꿈꿨다. 대개 ‘할 수 있음’의 범주를 결정짓는 것은 나에 대한 한없이 매정한 자신의 평가였는데,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제자리걸음이면? 입시는 차치하고서라도 내 좌절을 감당할 수 있을까?’
D와의 이야기는 줄곧 나를 괴롭히던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D는 노력으로는 안 될 것이 없다는 종류의 ‘무한 희망’을 설파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다잡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자는 다짐을 되새길 기회가 됐다.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를 두고 나를 비난하지 않기. 결과와 거리를 두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를 품어줄 준비를 하기. 단, 최선을 다할 것. 적어도 내 노력이 부족했음을 이유로 아쉬움을 느끼진 않도록.
향간에 떠도는 성격 유형 검사 지문 중에 ‘긴장을 느낄 때도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느냐’라는 내용이 있다. 언젠가 응답할 때는 당연히 가능하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오늘 깨달았다. 나는 집중을 유지할 수 없다!
오늘, 첫 사설 모의고사를 끝냈다. 어제 새벽부터 긴장이 돼서 배가 아팠다. 복통은 긴장할 때의 고질 증상이다. 하필 뒤늦게 마신 커피가 말썽이라 새벽까지 잠도 이루지 못했다. 과장을 아주 살짝만 보태면 수능 전날보다 많이 긴장했다. 자그마치 6년 이상을 준비한 수능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법학적성시험에 임할 때는, 누가 봐도 열세인 싸움에 허름한 맨몸으로 전장에 나서는 기분이다. 비루한 나의 뇌, 한없이 유약한 정신이 발목을 잡았다. 굳이 누군가 상기해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바야흐로 모의고사. 내 현주소가 낱낱이 드러날 시간이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망쳤다. 기분이 괜찮냐 하면은 확실히 아니다. 찔끔 슬퍼서 속으로 눈물 한 방울 훔쳤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 모의고사가 어찌 풀렸든 간에 남은 4개월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의 울적함은 덮어두고 내일을 향해 정진해야 한다.
그냥 훌훌 털어버리기. 말처럼 쉽진 않지만, 어려울 건 뭐야? 오히려 호되게 얻어맞고 나니 오늘 모의고사를 치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기로 남은 사설 모의고사를 죄다 신청했다. 앞으로는 시험 직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 모의고사를 치게 됐다. 꾸준한 상승곡선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적어도 매 시험에서 공부의 보람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도 아주 조금은 서글퍼서 몽실몽실한 곰 인형 다리를 좀 안고 있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그리고 물리적으로 내 옆에 날 위한 포근하고 따스한 무언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어느덧 봄이다. 자가격리 이후로 거의 3주 동안을 두문불출했으니 계절 변화에도 예민할 수가 없었다. 장장 20여 일 만에 카페에 가느라고 오후 햇볕을 쬈다. 오랜만에 양껏 야외 공기에 더한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끼고 싶었지만, 이미 오전을 허비한 나는 그저 바삐 카페로의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도보로 5분 정도 걷는 동안에 쬔 햇볕만으로도 제법 기운이 차는 걸 보니 확실히 광합성은 이롭다. 벚꽃이 모두 지기 전에는 근처 공원으로 꽃 구경을 가야겠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다. 한 과목에서 40문제 중 무려 20문제를 맞혔다. 반타작이다. 예상보다도 충격적인 점수였지만 어째 마음이 평온한 걸 보면 앞으로 갈 길이 마냥 고되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심기일전하고 공부에 매진하는 요즘, 문제가 안 풀리면 나를 탓하기보다는 생각한다. ‘만년필 씻을 때다!’ 그리고 멀쩡히 잉크가 가득 차 있는 만년필을 들고 화장실에 가서 열심히 씻긴다.
만년필 세척은 귀찮지만, 굉장히 쉬운 단순 노동이다. 잉크가 모조리 씻겨나갈 때까지 머리를 비우고 물을 채웠다, 빼기만 하면 된다. 꽤 즐거운 시간이다. 묵묵히 잉크창에 베인 잉크 떼가 모조리 물에 녹을 때까지 10분 정도 만년필을 씻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은 물에 번져 내려가는 잉크 자국에만 향하고 모든 생각이 떠나간다.
사실 세척을 끝내도 곧바로 새 잉크를 충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건조는 빨라도 몇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깨끗이 씻긴 만년필을 가지고 방에 돌아오는 걸음은 방을 뜰 때보다 훨씬 가볍다. 이렇듯 만년필 세척은 요즘 내게 단순히 필요에 따른 행위 이외에 나름의 심신 안정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만년필과 잉크는 관리하기가 힘들고, 보관하기도 번거롭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애지중지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방치해서도 안 된다. 둘 중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간 무언가 잘못되기에 십상이다. 그러니 경제적인 도구는 당연히 아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볼펜에 비해 좋은 점이 거의 없다. 하나같이 뜯어볼수록 게으른 내 성미에 맞지 않는 것투성이다. 그런데도 만년필과 잉크는 약 1년 정도 나와 즐거운 동행을 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취미로 남을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역시 모두 마음먹기 나름인 듯하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고 모나 보이는 것도 어떻게 길을 트면 손에 쏙 맞게 벼려질 수 있나 보다.
할 일은 산적해 있는데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자꾸만 휴식을 찾게 된다. 미적대고 있는다고 눈앞의 일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일단은 회피하고 싶어지는 거다. 어물쩍대던 사이 100일의 벽도 깨져버렸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던 시점이 하필 중간고사 준비가 한창인 시점이라 긴장감 없이 얼렁뚱땅 넘어갔다. 사설 모의고사가 이번 주 토요일이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새삼스럽게 시험도 100일보다 덜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학년 2학기와 수험 생활을 병행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번 달은 중간고사와 과제의 늪, 그리고 그와 별개로 내가 해내야 할 법학적성시험 준비에서 허우적거렸다. 공부 그 자체보다 힘든 것은 내 부족함을 직면하는 일이다. 요즘 한 교수님은 수업마다 ‘이것도 모르면서 문과라고 말할 생각하지 마!’라고 호통을 치신다. 공교롭게도 ‘이것도’는 대체로 내가 몰랐던 것들이다. 아, 나의 무지는 이다지도 다채롭구나…. 그러나 원래 공부를 향한 길은 좁다고 한다. 공자는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걸 모른다 하는 자가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걸 속속들이 아는 나는 반쯤은 진정으로 공부하는 법을 아는 게 아닐까?
시험이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어느덧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는 ‘파이널’ 모의고사와 강의를 마구 홍보하고 있다. 나도 부랴부랴 모의고사를 접수했다. 막상 ‘파이널’ 이름을 단 문제지를 받아보니 싱숭생숭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3월의 백지상태 그대로인데 파이널이라니.
나의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도 이제 종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 조바심이 났다. 내 불안감이 고스란히 티가 난 모양인지, 저녁 식사 시간에 아빠가 넌지시 요즘 어디가 안 좋으냐고 얘기를 꺼내셨다. 내친김에 시험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하나부터 열까지 꺼내놓았다. 아빠는 조급함 대신 여유를 가진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도 하셨다.
확실히 최근에는 디데이가 나날이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매주 주말에 마주하는 모의고사의 처참한 성적을 볼 때면 더욱 마음은 어수선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시간이 남아있고,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더 나아가기로 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아침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내게 오전이란 잠을 못 자서 깨어있는 시간이었지 하루를 시작하는 때가 아니었다. 더욱이 대면으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데다, 의무로 밖에 나가야 할 이유도 없는 요즘에는 더했다.
그런데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모의고사를 풀다 깜빡 졸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30분이 넘게 지난 채였다. 지나치게 경각심 없는 내 모습에 화가 나서 울었다. 그리고 매일 7시 50분 전에 기상하기로 했다. 근 5일 동안 성공했다. 작심삼일의 벽을 넘었으니 이제 21일을 넘겨볼 참이다. 21일 동안 같은 일을 하면 습관이 생긴다고 한다. 21일 동안 제때 일어나면 비로소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오후가 되면 기진맥진해서 커피를 수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잠드는 시간은 거의 바뀌지 않았는데 일어나는 시간만 억지로 앞당기니 당연하다. 근 3일간 내 커피 섭취량은 역대를 경신했다. 보통 한두 달에 한 번 주문하는 더치커피 원액을 일주일 만에 먹어 치우고 어제 새로 주문했다. 카페인 의존도를 낮추면서 정신을 말끔히 두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쯤 하면 실전에서 내 상방과 하방은 어느 정도 구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도가 어찌 됐든, 가능한 내게 주어진 최선만큼의 성과는 달성하고 싶다. 말인즉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운의 영향을 줄이고 싶다. 아침형 인간으로의 전환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내 여름은 피부로 온다. 날이 조금만 무덥고 습해지면 곧장 아토피가 심해지니 모를 수가 없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증상이 심하다. 피부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밴드를 붙여놨다. 붙어 있는 동안은 함부로 손을 못 대니 긁을 일이 없고, 하루쯤 뒤에 떼놓으면 밴드의 소독 성분 덕분에 상처도 감쪽같이 나아있다. 그래봐야 반나절도 못 가서 긁으니 또 밴드를 붙이고 또 뜯고 반복, 그러다 보니 종강이 성큼 찾아왔다.
마지막 학기의 기말시험 기간은 유난히 혹독했다. 다시 일상의 궤도에 서니 확실히 마음은 가볍다. 물론 한편으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본 시험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기출 2회독을 인제 막 시작했고, 시험 기간에 잔뜩 밀린 파이널 모의고사도 쌓여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다가도 그냥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기도 하다. 시간은 손 쓸 새 없이 흘러갈 따름인데 나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지만은 않도록 정신을 바짝 붙들어 매고 있기만 하면 그만이다.
부산스러운 와중에 요리를 했다. 부모님이 모두 일정이 있으셔서 집을 비우셨는데, 저녁으로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나를 위한 소중한 한 끼로 정성스러운 하루를 만드는 일은 소소하지만, 꽤 큰 포만감을 준다. 그런고로 당분간 내 좌우명은 정성스러운 하루 만들기다.
막상 시험이 약 4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큰 감흥은 없다. 오히려 초연해진다.
기출에서 거듭 틀리는 문제가 나올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오독한다는 건 3달 동안 성장이 없었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지만 일관되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만 콕 집어 교정하면 되는 셈이니 오히려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거겠지? 이런 혼란함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인제 컨디션 관리가 정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7시 기상도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 내 두뇌도 시험 당일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요행을 바라고 있다. 기가 막히게도 오랜만에 자취 생활 중 집에 들른 동생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잘 되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했다. 뜨끔했다. 요행을 갈구하는 마음은 버리고 성실함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정신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막상 시험이 임박하니 한없이 나약한 내면이 민낯을 드러냈다. 시험이 다가오면 긴장보다는 곧 다가올 해방감에 대한 기대와 쾌감이 클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엄마는 불안에 사로잡힌 나를 데리고 카페로 나가셨다. 그리고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일 따위는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법학적성시험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잘 안 되면, 또 다른 길도 있는 거라고. 어디에든 활로는 있기 마련이니 가볍게 생각하라고.
불쑥 근거 없는 암담한 미래가 떠오를 때면 현명한 나의 친구들, 그리고 가족이 해준 얘기를 상기한다. 긍정적으로, 내가 잘해온 것을 더 많이 생각하기. 그리고 나를 믿기. 절박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낙관론자가 되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