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역으로 응시한 수능에서 총 세 문제를 틀렸다. 국어에서 하나, 수학에서 둘. 그것이 내가 인생에서 거둔 최고의 성취였고, 뒤따른 결과들이 내 지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졌다. 꿈꿔왔던 대학에 진학해서, 보다 안정된 플랫폼 아래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하지만, 꿈 같던 성취 이후에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맹목적으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온 끝에 얻어 낸 수능 성적은, 이후 내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지는 못했기에.
그 전까지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바람직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만한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수능 공부에, 그리고 학생부 관리에도 그토록 목을 맸던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어지는 맥락에서 고등학생 시절 내가 그린 20년 후의 나는, 복지 사각지대의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에 헌신하는 인권 변호사였다. 특히 대학교 입시에서 수시 학생부종합 전형 지원을 준비하던 고등학생으로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이러한 이미지를 굳히는 것에 기여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 결과, 생활 기록부 속에서 등을 떠밀려 반 대표로 참여한 글쓰기 대회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인권을 주제로 글을 적어,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보여’주는 활동이 되었다. 조원들이 개개인의 사정으로 참여를 못해 오롯이 내가 마무리했던 국어 과목 조별 과제는 ‘조원들과 어려움을 극복하려 협력하는 과정에서 연대의 중요함을 알 수 있었’던 경험으로 둔갑했다. 수많은 스쳐 지나가는 활동들도,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가 후에 어떤 식으로든 내가 그린 바람직한 미래상과 관련이 있게끔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바람직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의미를 찾는 것", 이를 위한 여정이 지난 내 학창 시절 전부를 대변한다. 그 끝에는 찬란한 수능 성적표가 남았다. 그것이 전부이자 끝이었다. 그 기저에는 단순히, 그 '의미'를 찾고 나면, 또한 당시에는 그 '의미' 발견의 1차적 관문이었던 대입을 거치고 나면 다음은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이러한 맹목적 신념이 그야말로 오산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이전까지 그랬듯, 내가 그려둔 삶의 의미를 지도 삼아 무엇이든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나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침체기를 겪었다. 오직 끝없는 무기력함만이 무엇이든 해내려던 열의를 대신했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나조차도 정확한 이유를 규명하기 어려운 ‘무기력함’의 범람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삶의 목표로 삼아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의미 찾기’, 이어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전까지 맹목적으로 따라온 삶의 목표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바람직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만한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의 욕망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 속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위해 애쓰는 내가 있을 뿐, 진정으로 나를 위한 나의 욕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 배제된 ‘나의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만큼 공허한 일이 있을까? 침체기를 맞은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당장 코앞의 대학 입시에 치여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폐해였던 것이다.
이후 다른 어떤 공부를 하고, 누군가가 했다는 번드르르한 말을 찾아본다 해도 침체기 극복법을 알아낼 순 없었다. 수렁에 빠진 것은, 그리고 스스로의 등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밀어오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었기에. 스스로가 답을 찾지 않으면 별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직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의미를 찾는 것’이다. 다만, ‘의미’ 앞에 ‘나만의’가 붙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는 ‘나’만의 의미를 찾는 것이 지금 내가 사는 이유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어찌 보면 침체기를 극복하려고 아둥바둥 몸부림 치는 시도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이것저것 떠오르는 조각들을 마구 블로그에 끌어모으다 보면, 무언가는 뚜렷하게, 혹은 얻어 걸리게나마 보이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에.
여태까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없어서, 나만의 의미를 알아내는 건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내 속의 내가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서투른 걸음이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어디서든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나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의미'를 찾는 이번 여정에서는, 수치로 남는 성적표 이상의 무언가, 예컨대 내 삶의 나침반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