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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Mar 06. 2023

단순하지만 풍요롭게

심플 이즈 더 베스트, 정말일까?

 한동안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먼지와 함께 켜켜이 쌓여 있는 물건들이 어느 순간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정리에 정리를 거듭했다. 버리고, 팔고, 기부하고, 나눔하고의 반복. 그 결과 나의 집은 놀랍도록 넓어졌다. 원래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이사 갈 때도 좋고, 청소할 때도 너무 좋다. 더 이상 이전으로는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그 이후에도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보고, 관련 책도 읽으며 미니멀리즘을 아예 내 생활 습관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무엇인가를 사기 전에 충분히 구매한다, 소모품은 끝까지 사용한 후 재구매한다, 광고나 세일에 현혹되지 않는다, 물건보단 경험에 소비한다, 중고거래를 이용한다 등 쉬워 보이는 듯 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장들을 머리에,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 결과 공간은 늘고 소비는 줄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니멀리즘을 '적은 수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어 의미상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각자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미니멀리즘도 각자의 맞게 변형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앞으로도 살 생각이 없다. 누군가에겐 TV가 꼭 필요하겠지만 나에겐 없어도 무방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프로그램들은 너무 유해하며 나에게 TV소리는 소음이고 시간 낭비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정반대의 의미일 수도 있다. 대신 언젠가 빔 프로젝트를 구매할 의향은 있다.


 대신 난 덕질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물건은 많다. 본가에는 비스트 시절부터 하이라이트 앨범까지 커다란 박스로 한가득 쌓여 있고, 그 외에 브로마이드나 포토카드도 한가득이다. 활동을 쉬지 않는 내 가수 덕에 서울 자취방에도 점점 물건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줄이거나 정리할 생각은 없다. 옛날부터 써온 내 일기들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인형이나 피규어를 열심히 모았지만 지금은 한 두 개를 남기고 다 정리했다. 때때로 구매 욕구를 자제하느라 꽤나 힘이 들지만 어찌어찌 잘 이겨내는 중이다. 늘 사고는 후회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니멀리즘에 있어 늘 고민인 건 책과 옷인데, 이 가장 짧은 두 단어가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나는 책이 너무 좋고, 종이책과 전자책을 고루 읽지만 종이책만의 느낌은 역시 떨쳐내기 어렵다. 세상엔 재미있는 책이 왜 이렇게 많아서 날 힘들게 하는지. 가난뱅이인 내겐 책은 비싸고, 작은 내 집의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지금은 다 읽은 책들 중 좋은 책은 주변에 나눔 하고, 그렇지 않거나 오래된 책은 중고서점에 판매하는 걸로 타협하고 있다. 옷은 더 어렵다. 입는 스타일이 바뀌면서 안 입는 옷들을 많이 정리했지만, 정리한 만큼 사고 싶은 옷들도 늘어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옷을 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른다. 전에는 싼 옷을 많이 샀다면, 지금은 질 좋은 옷을 사서 오래 입는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고 지구를 위한 일이니까.


 이런 생활 습관은 환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지금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사고, 너무 많이 버린다. 광고는 이미 우리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고, 그것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세상엔 신기하고, 편리하고, 예쁜 물건들이 넘쳐나니까. 하지만 사기 전에 한 번, 두 번, 세 번 더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꿈꾸는 많은 삶의 모습들 중 하나는 물건이 적은 집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미니멀리즘에서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은 미니멀리즘보다 더 값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동거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동생이어도 좋고, 친구여도 좋고, 둘 다 아니어도 좋겠다. 그냥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황선우 김하나 작가처럼, 서로 맞춰하며 함께 나이 들어갈 사람이면 충분하다. 1인 분의 삶을 너무 사랑하는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앞으로 변해갈 내 삶의 형태를 만끽하는 것도 삶의 큰 기쁨이자 재미이겠지.


 한동안 소홀했던 나의 공간에 다시 빈틈을 만들어야겠다. 일상은 단순하게, 마음은 풍요롭게. 미니멀 라이프 지망생인 나는 여전히 우당탕탕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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