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보고
학창 시절, '십 년 뒤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같은 류의 질문에 답을 써야 하는 시간들이 종종 주어졌다. 그럴 때마다 있는 힘껏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하다 히죽이며 뻔한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멋진 옷차림을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예쁜 집, 차 한 대를 가지고 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때로는 휴식을 위해여행을 가는 사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선물을 자주 한다.' 지금 보면 허무맹랑한 문장이지만 저 문장을 쓸 때만 해도 내가 이십 대 후반이 되면 위의 문장처럼 살고 있을 줄 알았다. 늦어도 삼십 대 일거라 생각했지, 모든 것들이 희뿌옇게 흐려져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십 대의 내가 생각한 '멋진' 옷차림과 '좋은' 직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네이버웹툰 <아홉수 우리들>에는 나처럼 멋진 미래를 기대했지만 직장, 연애, 시험, 가족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세 명의 '우리'들이 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봉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미대를 나왔지만, 작은 출판사의 계약직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계약 만료와 함께 오랜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깊은 절망에 빠진다. 시크하고 약간은 냉소적인 차우리는 항공사 승무원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과 철없는 엄마와 남동생 때문에 악착같이 살며 일찍 어른이 되었다. 내성적이지만 성실한 김우리는 공시생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본인이 가족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 자존감이 낮다. 고등학교 시절 이름이 같은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가 우연히 같은 반이 되며 친해진 셋은 '우리들'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스물아홉이 된 우리 셋은 각자가 처한 버거운 현실에 짓눌려 버릴 때도 있지만 서로를 보듬어가며 함께 성장해 간다. 싸우고, 위로하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이것이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형식에 그들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더한 성장 방식이다. 이 세 우리에게서 나라는 사람의 조각조각들을 발견하면 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님의 말처럼, 조금은 뻔한 이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얼룩처럼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렇게,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 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며, 스릴만점으로 올라가다 예고 없이 추락해 버리는 놀이공원의 자이로드롭처럼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던 때였다. 하지만 봉우리의 말처럼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 되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꼭 뭔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와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다. '아홉수'라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이젠 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장난일 뿐이니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아홉수 우리들>을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들'이 독자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불행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며, 사실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