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날 키우는 일 말고는 백수지?”
샤워를 끝낸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훅 올라온다. 못다 빠져나간 욕실 안의 더운 수증기 때문인지 드라이기의 바람 때문인지 그렇게 한참을 뜨거웠다. 사실 마음이 열감으로 매일 조금씩 팽창 중이다. 이러다 펑 터져버리고 말지 하는 일상의 순간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 치고 들어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사정. 겉으로는 평온한 날들이 이어진다.
브런치 작가(부담스러운 호칭이지만)는 평온한 수면 아래의 숨겨진 화산 같은 존재다. 활동할 것인지 쉴 것인지는 오롯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하얀 바탕에 홀로 깜빡이는 커서도, 나도 외로운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흡사 적나라한 형광등 불 빛 아래 아찔하게 민낯을 드러내는 기분 같기도 하다. 쉽게 써질 줄 알았다. 머릿속을 오가는 문장 들이야 늘 있는 상태였으니 제대로 정리만 하면 금방일 것 같았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마음대로 써제낄 수 있는 것도 써제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와의 대화도 마음이 열려야 가능하다. 본캐도 감당하기 힘든 내향인의 낯가림이란.
샤워 시간이 길어졌다. 후다닥 비누 거품에 휩싸이기 무섭게 털어내던 그 짧았던 순간이 꽂히는 단어를 음미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번주에는 ‘표류’에 꽂혔다. 정처 없이 떠돈다는 의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다시 생각한다. 왜 하필 샤워시간인지는 모르겠다. 거품의 촉감에 마음을 뺏긴 것 같기도 하고, 바디클렌저 향기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가지고 놀던 플라스틱 미니 자동차들이 물살에 못 이겨 표류한다. 배수구까지 떠내려 가기 전에 구출해 본다. 찰나에 슬쩍 내 욕망도 함께 건져 올린다. 표류하고 싶은 걸까? 멈추고 싶은 걸까?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과 잠들기 전까지의 그 짧고도 긴 시간을 통째로 나를 위해, 정확히는 내 습작을 위해 내어 준다. 동동거리며 표류하는 문장들을 잡아 채 본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단어들도 귀하게 메모해 둔다. 그것들에 둘러 싸여 있다가 은근한 관종끼를 들키기도 하고 어그로 욕심을 확인하기도 한다. 마음은 포장하고 싶지만 먼저 찢어발겨야 가능한 작업. 이 정도 깜냥의 글도 그렇다.
고무적인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발로 썼지만 발행)에 대한 성취감이 늘었다는 것이다. 자발적 프로젝터와 프로 시작러로 꽤 많은 시간을 루틴과 자기 계발에 투자했지만 늘 끝이 없는 싸움 같았다. 듣기 좋은 말로 내면을 다지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성과가 한눈에 짠 하고 보이는 것은 아닌지라 지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 뭐 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구구절절 얘기하기 구차해지는 나에게만 중요한 루틴들. 그 사이에 남들이 모르는 사소한 사건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인데 어떻게든 결과를 내는 이 활동이 꽤나 힘이 된다.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의지박약의 순간 ‘돈(錢)기부여’ 하는 나에게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지만 동시에 이 여정의 마지막을 생각해 본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까. 상징적 마지노선 같은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생기면 이 표류를 끝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순간이 진정한 표류의 시작일까. 만 7세 어린이의 악의 없는 질문에 이토록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생각한다. 왜 하필 글을 쓰고 싶었을까. 무엇을 꺼내놓고 싶었을까. 또 어떤 기대감으로 빈 화면을 채우고 있는 걸까. 묻어두고 회피했던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는 시간이 자꾸 늘어나고, 어쩐지 방황은 더 깊어진다. 원래 백수가 더 바쁘다.
#백수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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