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엔 완벽한 프로세스로 디자인해보고 싶어요!

by 상은쌤

산디 전공 3학년이 되고

새학기가 시작되면 의욕이 불타오르죠.

'이번 학기엔 뭔가 제대로 해보겠어!'

이런 다짐 정말 좋습니다.


저는 개강 첫 수업을 할 때, 늘 학생들에게 묻곤 합니다.

이번 학기 수업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요.


해마다 공통되는 학생들의 바람을 모아보면 이렇습니다.


"제대로 프로세스를 밟아서,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2학년까지 했던 작업들보다,
훨씬 더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특히, 제품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이런 바람이 큰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해보면,

'완벽한 프로세스'라는 말 속에는

'실무 디자인 프로세스'에 가까운 체험을 해보고 싶어요 라는 열망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리서치부터 완성된 디자인 목업까지

전체 과정을 제대로 한 번 밟아보는 것이죠.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뭐부터 해야, 제대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프로세스’라는 것이 뭘까요?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는

아주 단순화하면 아래와 같이 설명되곤 합니다.


리서치 → 컨셉 → 디자인 → 완성


한 단계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과정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현실 세계의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바라보면,

디자인 프로세스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볼게요.

6년차 디자인 팀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개인용 PDA 디자인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어요.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

개인의 일정 관리를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제품이었죠.

나름대로 해외 PDA 시장조사도 하면서

디자인 방향을 잡았어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도 전 놓친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매 단계 클라이언트 승인도 받았고,

디자인 어워드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클라이언트 임원이 이렇게 말했어요.

“제안해준 디자인은 좋았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가 이 제품을 만들어 팔기에는 준비가 덜 된 것 같습니다.

시장 상황도 그렇구요.”

결국 그 디자인은 양산이 되지 않았어요.

만들어 팔 수 없는 디자인에 클라이언트는 투자를 한 셈이었죠.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건가?'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그때 빠져 있던 게 뭔지 나중에야 알았어요.

아무리 완벽한 과정을 밟아도,

프로세스 바깥에 있는 것들이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저는 그 회사 역량,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적절한 시장 타이밍 등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 채

디자인만 완벽하게 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글로 전달되지 않아요.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함께 고민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죠.


그 이후 제가 바꾼 건 이거예요.

혼자 완성하려 하지 않고,

중간중간 밖으로 꺼내서 보여주고,

반응을 보고, 다시 만드는 것.


저 혼자만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계속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하면서 나아가는 과정.

이것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바로 제가 몸으로 배운

'디자인 프로세스의 실제 모습'이에요.




산업디자이너에게 디자인 프로세스는

앞만 보고 쭉~ 달려가는 직선도로가 아니에요.

매 단계마다 순환하는 ‘회오리 감자’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평면에서 보면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입체로 보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아래 그림처럼요.


2화 개념도_1_20260402.gif [개념도 01] 평면에서 본 프로세스
2화 개념도_2_20260402.gif [개념도 02] 회오리 감자 프로세스


수업에서 제가 ‘팀:팀’ 토론을 시키는 이유도 바로 이거예요.


2화 개념도_3_20260402.JPG [개념도_03] 이렇게 해봐요!




이렇게 해야 자신의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디자인 방향을 바라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요.

그래야 그 다음 필요한 디딤돌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어요.


A. “디자인 프로세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건너갈 수 있어요.”

디자인 과정은 앞으로, 옆으로, 때론 다시 뒤로,

적당한 디딤돌을 찾아가며 시냇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해요.


다음 화에선

‘리서치→아이디어’로 넘어가는

‘첫 번째 징검다리’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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