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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카 Dec 24. 2023

기초수급자가 돈을 빌려줬다 (후기)

익명으로 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난 후기다.


25일이 월급날이라던 그였다. 그에게 연락이 온 것은 의외로 그 날이 되기 며칠 전이었다.

뜬금없이 잘 지냈냐는 물음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왜 연락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그냥 안부차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가 다음 말을 하기까지 기다렸다.

'저번에 알려줬던 지원금 신청했는데 대상자가 아니라고 하더라..'

최근 현황을 공유하는 그였다.

그래서 다른 노력을 어떻게 더 할 수 있을지 그에게 알려줬다.


그는 오랫동안 답이 없었다.

돈을 빌려줬던 날에는 답장이 3분만 늦어도 이제봤어!라며 나와 빠르게 연락을 하려는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바뀐 그의 모습이 어디엔지 모르게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혹시'

연락이 와서 반가운 마음은 여전했지만 기분이 찝찝했다.

돈을 더 빌려달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가 말로 내뱉기 전까지는 아무 추측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한번만 더 도와줄수는 없겠지..?'

차라리 예상했던 행동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은 안된다고 거절한 후, 그에게 돈은 갚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끝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주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생각하고 지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실패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은 내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번 일은 내게 있어 많은 변화를 야기했다.

앞으로는 누군가를 도울 때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것 같다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남편은 차라리 '이번에 돈을 갚아서 신뢰를 쌓으면 돈을 더 빌려줄게!'라며 빌려줬던 돈을 다시 받아내라고 했다. (ㅋㅋㅋ)


커뮤니티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글을 쓴 것도 보게 되었다. 아니, 내 미래의 모습일수도 있겠다.

이곳에서 익명으로 알게 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줬는데, 여태 돈을 갚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조금씩 배분해서 총 1,000만원 정도로 돈을 많이 뿌렸는데 성공했던 적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돈을 더 요구해서 이제는 도움 주기를 그만하겠다는 정보까지 덧붙였다.


무엇이든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면 안된다는 교훈을 깨달은 날이었다.



.. 이 생각을 마치자 그에게 연락이 왔다.

'계좌번호 알려줘'


+)추가: 지금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고있어요. ㅎㅎ 추후에 또 업데이트 드릴게요!


어쨋거나 마음은 아프다


PS. 그래도 기부를 하고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마땅히 믿을만한 곳이 없었다. 최근에 괜찮아보이는 기부처를 찾은 것 같아, 이번 달부터 소액이나마 정기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에게 가치가 있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큰 가치를 가져와주는 의미를 만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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