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카 Dec 16. 2023

기초수급자가 돈을 빌려줬다

번아웃이 온 느낌의 요즘이다.

최근의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다 한 포스팅을 본다. '소액 대출 50만원을 하려는데 안된다'

무슨 말이지? 50만원?이라는 생각에 게시물을 봤다.

카카오 소액대출같이 왠만하면 돈을 빌려주는 기관에서도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이다.

50만원을 대출받으려고 하고, 그것마저 못 받는 정도면 그 사람의 상황이 매우 안 좋아보였다.


댓글로 무슨이유냐고 물으니, 집 관련 문제라고 한다.

궁금증은 더 커졌다. 집 관련 문제인데 고작 50만원을 빌려야한다고?


친구에게 빌릴 수 있냐고 물으니 친구가 없단다.

단기알바라도 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돈에 있어서는 매 번 계획적인 삶을 살았던 나는 이번 게시물의 주인공이 이해가 안 되었다.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 수 있지?라는 생각이었고,

동시에 이 사람이 정말 간절한 상황인 것 같다고 믿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하게 물어봤다. 그는 대답했다.

지금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는데, 당장 내일 집에서 쫒겨나듯이 나가야할 것 같아


나는 기초수급자인 주제에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사실 나도 넉넉치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에 이 정도 리스크는 감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최소로 필요하다고 했던 30만원을 송금했다.

솔직히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내일이 바쁠 것 같아서 길게 묻지 못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다니.

나도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만화책에 나오는 정의감이 넘치는 모자란 캐릭터가 된 느낌이었다.

만화책에서는 이런 사람이 주인공이던데, 현실의 나는 그냥 정말 현실감각 없는 애송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사기꾼 같다는 생각, 혹은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돈을 안 돌려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지만, 만에 하나 내가 누구를 진짜로 도울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이 더 후회될 것 같았다.


보냈어

그리고 바로 답장이 왔다.

나에게 온 답장은 내 심장을 쿵 내려앉게 했다.





안왔는데?


최소한 양심이 있는 사기꾼이라면 고맙다고 하고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으로 또 사기를 쳐서 돈을 더 뜯어내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무리 사기를 각오했어도, 이렇게 바로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물리적으로 심장이 정말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추악한건가.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직시해야한다며 혼자와의 싸움을 하던 와중에, 새로운 메세지가 왔다.


왔어! 헐

이제야 송금이 되었던거다. 물론 그가 나에게 사기를 치려고 떠봤다가 자백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옵션에 두지 않기로 했다. 이후 이어진 리액션으로 보았을 때, 그는 정말 돈이 간절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정부의 지원과, 관할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월급날이라던 25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과연 그는 다시 연락을 할까?




이번 사태 이후, 무작정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쌓기 시작했다.

특히나 돈으로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무슨 의미일까에 대한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경험은 자신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된 사람의 경우, 불행의 원인은 본인에게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도박을 했다던가, 그릇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월세를 계속 밀렸을 가능성 말이다. 이런 경우, 상대는 도와줘봤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다시 이 상태에 올 것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이라면? 10,000명을 도와줬을 때 한 명의 삶이 바뀌는 성과가 있었다면?

물론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이렇게 자선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반대로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을 목격하는 것도 살면서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만에 하나, 단 한 명이라도 진실하게 도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기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택했다.


여기까지만 생각했다면 나는 무척이나 뿌듯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번에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쉽게 돈을 버는 루트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악용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인생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꼴인 것이다.

당장 히어로가 된 듯 한 감정을 느끼고자 경망스럽게 행동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나는 이번과 똑같은 상황이 펼쳐진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정보를 공유해주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살면서 정보가 필요해보이는 누군가에게 정보를 제공해줬던 적이 종종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정보를 폐기했다.

하지만 나는 몇 명의 삶을 바꿔놓기도 했다. 내가 제공했던 정보가 자신의 삶을 바꿨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나에게 찾아와 고맙다며 인사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건너 건너 알던 분이라 얼굴도 못 알아 봤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놀랐다.

이로인해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데 꽤 호의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앞으로도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돈으로 도와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25일 즈음 한 번, 이후 피드백이 있다면 이 때 한 번, 이번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올 것 같다. 


제발 기회가 오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