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통역사가 없어졌어요.." 이번 콜은 일반적이지 않음을 직감했다. 어디서 전화가 왔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내용을 들으며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발화자는 내부고발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다섯가지 케이스로 추려서 왔습니다." 발화자가 말했다. 그는 길게 적어온 한국어로 된 진술서를 읽는듯 했다. 이런 용어는 많이 다뤄보지 못해서 다른 통역사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빠져나올까 머리를 굴렸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해줄까라는 생각과, 과연 어떤 내용을 고발할까 호기심이 들었다. 이번 통역은 100% 집중해서 전투적으로 통역에 임하자는 마음이 섰다.
클라이언트(영어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측)는 변호사 사무실인 것 같았다. '비자금으로 챙긴 돈으로 여행을 가서 라면을 취사했어요.'라는 발언에도 웃지않고 (나는 상황이 너무 뜬금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정말 심각하네요.."라며 말을 받아적었다.
이번 콜에 들어가며 알게 된 사실은, 고소 고발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비용을 내지 않았다. 만약 패소한다면 비용이 청구되는 것이 없었다. 승소한다면 판결금을 나눠서 가지게 된다. 즉, 회사에서 나의 위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잃을게 없는 싸움이었다. (당연히 모든 회사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이전에 미국을 여행하며 만났던 어느 분이 해주셨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병원에서 물품을 자꾸 훔쳐가는 직원에게 패널티를 줬더니 그 사람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해서 이겼어요."
또 다른 콜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상대 과실이었는데 2년 후에 10억규모 소송할꺼라고 난리피우는 통에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치매증상이 생겼어요."
미국은 소송의 나라라고 말만 들었지, 내막은 처음 알았다. 실제로 소송을 하는 방법이 쉽기도 하고 부담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반면, 통역을 하면서 소송 리스크가 생긴다는, 양날의 검이 내 손에 쥐어졌다는 것 역시 같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