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내 이름으로 된 열쇠를 갖고 싶다

by 일상세팅러


늘 조용한 공간을 원했다.

여섯 식구와 사는 20년은 여러 소음으로 이루어진 시간이었다.

특히 조부모와 사는 집안에서 조용함은 사치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노화가 진행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크게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는 종종 방을 넘어 들려왔다.

큰소리로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청력에 소리치는 대화소리에 짜증이 날 때도 더러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을 갖고 싶었다.

비가 오면 괜히 분위기 잡으며 빗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날 맑으면 가만히 창문밖 햇살을 감상할 수 있는 조용한 나만의 방을 상상했다.

하지만 내 삶을 내가 가꾸어나가고 싶은 지금은

나만의 방이 단순히 조용한 나만의 '공간'을 넘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라는 걸 안다.


3대가 사는 대가족 속에서 자란다는 건

식탁 위에 놓인 반찬을 공유하듯, 공간도 함께 나눠 쓰는 감각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집에 어른이 항상 계시니 사춘기 이후에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적도 거의 없었고

조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반찬 위주의 식탁이 당연했다.

조부모님이 계시니 다른 가족들도 우리 집에 올 때가 꽤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고정되어 있는 집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명확하게 느낀 순간은 집에 내 취향이 반영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였다.

나의 취향과 선호가 생기면서 내가 어떤 공간에서 머무르고 싶은지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생겨났다.

'내가 먹고 싶은 걸 편하게 시켜 먹을 수 있었으면'

'거실에 턴테이블을 놓고 비 오는 날 조용히 들을 수 있었으면'

'친구들을 마음껏 초대할 수 있었으면.'

그렇게 자기만의 방은 내 마음속에서 점차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결혼해서 집을 사면 된다고.

하지만 난 집을 사는데 결혼이란 전제를 두고 싶지 않다.

결혼을 할 때까지 내 집 마련을 미루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집, 나의 공간을 찾는 이유는

누구와 함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취향이 존중되는 공간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벽지 하나, 조명 하나, 작은 화분 하나까지도 내 취향과 생활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삶.

결국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삶을 주도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만의 방을 찾는 여정은 녹록지 않다.

부동산 앱을 열어보고 월급과 대출 원리금을 비교하며 계산하면 한숨만 나오고

내가 모은 돈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다.


특히나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거 안정성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기반 중 하나다.

계약 만료로 타의에 의해 이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

밤늦게 불을 켜든 끄든, 친구를 당일에 데려오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런 집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안다.


아직 집은 없지만

집을 갖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나는,

자기만의 방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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